12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8:27-29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참된 고백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백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참된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여기에서부터 교회가 시작되고, 구원이 시작되고, 영원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누구로 아느냐에 따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도 있고,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막8:28이런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또 다시 제자들에게 좀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 두 번째 던지는 질문이 예수님의 진짜 질문입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8:29오늘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고 계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여기 와서 예배 드리고 있느냐?”
우리는 이 질문에서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왜 이 질문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중요한 고백을 했는데, 왜 자기 고백을 원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왜 이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셨는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시작을 세 가지로 정리해서 보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례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헤롯 왕이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목베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속에서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동일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환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옛날 갈멜산 꼭대기에서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와 대결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몸에 상처를 내며 소리지르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를 기도하였지만 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태웠습니다. 또 삼년 반 동안 이스라엘에 가뭄이 닥쳐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삼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가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 속에서 엘리야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레미야나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예레미야의 탄식과 눈물,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민족을 향한 애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진짜로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면 우리 인류는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원받고 영생 천국에 들어갈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엘리야와 예레미야는 모두 예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활동했던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이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님 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변화산 사건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같은 반열에 두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같이 희어지고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내려와서 그들을 덮고 그 구름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17:5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모세나 엘리야 와는 신분이 다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히3:5-6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동등하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초막을 지으려면 예수님을 위해서 짓고, 모세와 엘리야는 그곳에서 심부름하는 사환이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훌륭한 위인이나 철학자, 또는 정치 개혁가로 생각합니다. 이건 얼토당토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잠시 동안 세상에 사람의 형상으로 오셔서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의 구주요, 영원한 중보자이십니다.
2자기 고백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질문
이번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신 이유는, 다른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거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관심은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 우리 심장에서 나오는 고백, 그 고백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께 어떤 고백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신앙 고백도, 사랑 고백도 가슴으로 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는 질문에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선지자라고 합니다”라고 선뜻 대답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하시자 당황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나서서 고백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당시 상황으로는 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빈민촌의 목수 일을 하던 요셉의 아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배운 것도 없는 예수님을 어떻게 메시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고백해야 하는 문제요, 내가 믿어야 하는 문제요, 내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12월 20일 오전 6: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