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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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막8:14-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이방 선교를 마치고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와서는 예수님을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배 안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오고간 대화입니다.

제자들은 당황한 와중에 떡 챙기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열세 사람이 먹을 떡을 준비해야 되는데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먹다 남은 떡이 한 개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배를 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수군수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바리새인들을 겉으로 볼 때에는 기도도 많이 하고, 말씀을 많이 읽고, 신앙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위선자들입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속은 검으면서 밖으로는 하얀 체 합니다. 속을 더러우면서 밖으로는 거룩한 체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배만 채웁니다.

이들의 행동은 종교를 썩게 하는 얼마나 무서운 누룩입니까? 누룩은 가루 서 말에 조금만 넣어도 전부를 부풀게 합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좋게도 비유되고 나쁘게도 비유되는데, 복음도 누룩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한 집이 예수를 믿었는데, 그 마을 전체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 우리 한국에 선교사 두 분이 오셨는데, 지금은 일천 삼백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누룩입니다. 우리 모두 좋은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쁜 누룩도 있습니다. 좋지 않은 것도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에, 10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그들의 말을 들은 모든 백성이 다 원망, 불평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보고는 전혀 먹혀들지가 않는 것입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을 보십시오. 모세의 올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보다가, 고라와 다단, 아비람의 잘못된 선동을 따르는 세력이 더 많았습니다. 무려 회중에서 유명한 족장 250인이 고라와 다단 아비람을 따라 모세를 거스리다가 망했습니다.

어느 교회의 여집사님은 남편이 돌아가셔서 혼자 살았는데, 방을 세 주고 보니 댄스 교사였습니다. 매일 방에서 전축을 틀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대체 기도가 됩니까? 성경을 읽을 수가 있습니까? 목사님께 “목사님,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지요?”하더니, 웬걸 나중에는 그 여 집사님이 그 댄스 교사에게 춤을 배우더니 그 춤선생과 가출했다고 합니다.

그런 누룩은 무섭습니다. 거룩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도 위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누룩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과 사귀면 안됩니다.

교회를 슬쩍 슬쩍 비판하는 사람, 그 사람을 사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됩니다. 모두 목사님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조심해서 말하는데 ‘아니, 그 목사말이야...’하는 친구를 만나면 자기도 얼마 되지 않아서 똑같이, ‘그래, 그 목사 말이야..’라고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안 좋은 누룩으로 공격을 받지 않도록, 영향 받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잘못된 생각을 누룩처럼 사람에게 심어 놓습니다. 목사가 말씀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밤새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뿌려 놓습니다. 성도를 잘 가르쳐 놓아도 얼마 있지 않아서 마귀가 잘못된 생각을 심어 놓아서 괴롭힙니다. 그러면 목사가 얼마나 속이 타서 고통스러운지.

사도 바울같이 위대한 분도 고린도 교회에서 사도 바울을 얼마나 애태웠습니까?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후11:28-29

마귀가 와서 자꾸 성도들의 마음에 누룩을 뿌립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애타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룩 문제가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어느 구역이나 교회에 잘못된 사상이 들어가면 쉽게 퍼집니다. 좋은 소식은 잘 퍼지지 않는데, 나쁜 소식은 쉽게 퍼집니다. 그래서 나쁜 소식이 퍼지면 빨리 쓸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뒤엎어버립니다. 그리고 온 성도가 누룩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빵의 누룩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누룩,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엉뚱하게 들었습니다.

“아하, 우리에게 빵이 한 개 밖에 없으니까 우리 주님께서 걱정하시는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그들의 사상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헤롯의 잘못된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영적인 무지가 어떻게 오는가를 네 가지 측면에서 보겠습니다.

1떡만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영적 무지

14절에 ‘제자들이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떡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굶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사실 심각한 일입니다. 떡뿐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도 캄캄합니다. 어떤 사람은 은행에 돈이 있어야 늘 안심하고 산다고 합니다. 돈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으면 기가 죽고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은 오늘 밥을 먹고 나면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불안해합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더 불안해합니다. 당장 먹을 것도 있고, 입을 것도 있지만, 그의 심리 상태는 항상 배고프고, 항상 추우며, 항상 빼앗긴 상태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을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린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8:17-21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두움에 갇혀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진리, 영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계셨고, 제자들은 인간적인 것, 세속적인 것, 떡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어두움은 물질의 문제에 집착했을 때 생깁니다.

2믿음의 부족에서 오는 영적 무지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마16:8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구주가 되신 줄 알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떡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떡 문제는 주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삼백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먹이심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오병이어 기적과 칠병이어 기적을 행하심으로 친히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이 떡 문제로 서로 의논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하셨지, 믿음이 없다고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작은 자도 있고, 믿음이 큰 자도 있지만 믿음이 없는 자는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아예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작아지면 영적인 세계가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믿음이 작은 이유는 의심 때문입니다. 의심은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의심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서 생깁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만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을 닫아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에 부유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우리는 영적 어두움에 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커튼을 닫아두면 어두움이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망각에서 오는 영적 무지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8:19-21

우리는 여기서 영적 무지와 어두움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망각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신7:17-19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나를 위해 행하신 그 일들을 통해 오늘 현재화시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과거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그 은혜와 축복을 회상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눈물을 흘리면 통회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건만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민14:21-23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 사건을 성령을 통하여 회상하는 것이며, 오늘 현재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로 전에 있었던 오병이어 기적과 칠병이어 기적을 다시 회상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주님이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오늘 다시 회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을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기 위함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병과 약함을 짊어지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심판하시고 부활과 재림을 주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영적 무지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16:11

영적 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요3장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이며 관원이 그가 밤에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학문에 뛰어난 선생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었는데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갑니까?’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인지 되묻는 것은 영적 무지의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교회에 사람을 만나러 나옵니다. 예배가 중요하지 않고 모이는 것, 누구 누구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사회 사업이나, 교육 사업, 그리고 구제 사업을 하는 단체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사람도, 교파나 제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잘못된 신앙으로 오도하고 나쁜 영향을 주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사상과 교훈을 경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12월 14일 오전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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