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막8:11-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 위선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이방 선교를 마치고 유대 지방으로 가시니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모시지 않으면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낮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모시면 만족이 있습니다. 99칸 짜리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하지만 단칸방에 살아도 예수님이 계시면 행복합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욕구는 달걀과 같습니다. 아무리 싱싱한 큰 달걀이라도 반드시 안에 빈 공간이 있습니다. 백 개면 백개, 만 개면 만 개 빈 공간이 없는 달걀은 없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다 빈 공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세상의 돈으로, 명예로, 쾌락으로, 취미 생활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어서 결국은 만족한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세가 높아지고, 출세하면 만족할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우리 가슴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으면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내가 부자든, 가난하든, 공부를 많이 했든 무식하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만족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그렇습니다. 주님이 떠나가시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듯이, 매일 매순간 예수님과 붙어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동행하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리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세 가지로 가르쳐 줍니다.

1언제나 온유하고 겸허한 자세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나왔지만, 목적이 주님을 믿으려고 온 것이 압니다. 예수님께 예배 드리러 오지 않았습니다. 경배하러 온 것도 아닙니다. 만왕의 왕, 세계 열왕들이 무릎 꿇고 경배하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나오는데, 교만하고 거만하게 예수님을 힐난했습니다.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마음 속으로 탄식하시며 역겨워하시고 그들과 잠시도 같이 계시지 못하고 떠나셨습니다.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보시면 역겨워서 떠나 버리십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57:1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바리새인들, 머리에 먹물이 좀 들었다고 감히 창조주이신 주님 앞에 나오는데, 예수님에게 한수 가르쳐 주겠다고 지적하고 힐난을 한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탄식하시며 떠나가 버리셨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받지 못합니다.

사울 왕이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를 주셨습니다. 승리를 주셨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이 버리시니 마귀가 사울을 붙들었습니다. 한 날에 세 아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닭도 교만하면 죽는답니다. 암탉 한 마리를 놓고 수탉 두 마리가 서로 환심을 사기 위해서 싸웠는데, 힘센 수탉이 이겼습니다. 싸움에 진 수탉은 그만 픽 쓰러져서 구석에 처박혀 초라한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그때 이긴 수탉이 담장에 올라가서 “꼬끼오”하였습니다. “내가 이겼다”하고 으스대는데 독수리가 내려와서 탁 낚아채 가고 말았답니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나무도 부드러운 나무는 잘 꺾이지 않습니다. 갈대와 감람나무가 있었는데, 감람나무가 “에이그, 이 비실비실하는 갈대야. 나 봐라. 나 봐라” 하는데 거센 사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러니까 갈대는 확 누웠다가 일어나는데 감람나무는 뚝 부러졌습니다.

겸손한 사람만 주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끝까지 겸손하고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께서 은혜주시고 그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2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은혜 받아야지, 은혜 받아야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은혜를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왔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해 보려고, 예수님과 한 번 붙어 보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속으로 탄식하시면서 떠나가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취할 자세는 “은혜 받아야지,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지, 은혜 받아야지”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요7:37-38에

교회에는, 예수님께는 은혜가 강같이 흐릅니다. 누구든지 은혜를 사모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넘치게 받습니다. 은혜가 얼마나 좋습니까?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 다니는 다윗, 외적으로 보면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언제나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민족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탈무드에 보면 이런 귀한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든지 배우려는 자세를 지닌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누구인가? 자기를 이기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옳은 말입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마음대로 못합니다. 춤 바람난 여자들이 춤추러 가면 안 되는 줄을 압니다. 내가, 가정주부가, 아기 엄마가 춤바람 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자가 참으로 강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감사할 때, 만족할 때 부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현명한 자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누구에게든지 배우려는 자세를 지닌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중에 최고의 선생님, 교수님 중에 최고의 교수님이신 예수님 앞에 나오면서 바리새인들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말씀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하늘에서 오는 표적 좀 보여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을 수없이 보여 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늘에서 온 선생인 줄 알았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온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3:7

그들도 마음 문만 열고 보았다면 이미 보여주신 표적으로 충분히 믿을 수가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요1:31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오병이어,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시고)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더라.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5:32-39

성경을 보고 믿어야지 표적을 보고 믿으려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마24:24-26

따라 합시다. “말씀 중심, 교회 중심”

이것이 안전한 신앙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셨어도, 3년 동안만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를 지실 때는 표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매 맞으실 때, 침 뱉음을 당하실 때, 천사도 하나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왜 입니까? 그러면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는 다 망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피로 구원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수많은 표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그렇지만 바울이 옥중 서신을 쓰기 위해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옥문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무리 기도해도 자기 병도 낫지 않았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사도 바울을 수발하려고 왔다가 병이 들어 죽어갈 때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그때에도 감옥 문이 열리고, 표적을 행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바울이 표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써야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성경이 최고다”

제가 방언을 수십 년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러나 방언도 그치고, 예언도 폐할 날이 옵니다. 그러나 말씀은 영원히 폐하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있으면 기적도 따라오고 표적도 따라옵니다. 전선에 전류가 흐르면 불이 켜지고, 선풍기도 돌아가고, 에어컨도 돌아가고, 냉장고도 돌아가듯이, 말씀 중심으로 살면 우리 주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기적과 이적을 주십니다. 그러나 표적이 말씀을 앞서면 안됩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유대 공회의 공회원입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어도 겸손하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겸손한 자세로 은혜를 사모하면서, 말씀을 사모하면서, 말씀을 가슴에 품고 말씀을 묵상하며 살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동행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축복으로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