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6:32-3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막6:32-33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가버나움 해변을 떠나 갈릴리 동편에 있는 벳세다 광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벳세다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기에 한적한 곳입니다. 제자들에게 잠깐의 쉼을 주시려고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습니다. 사람들이 배보다 앞서서 남자만 오천명이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휴가 끝났습니다. 쉬는 것이 끝났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6:34주님의 제자들이 쉬려고 그 곳에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짜증 한번 안 내시고 눈을 들어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왜입니까?
목자 없는 양 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습니까? 그들을 사랑의 말씀으로 먹이는 선지자가 있습니까? 하나도 없었습니다.
양은 불쌍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부모 없는 고아보다 더 불쌍합니다. 고아는 부모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 없는 양은 살지 못합니다. 양은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양은 절대 일어나지 못하고 죽습니다.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 일어납니다.
파리가 와도 쫓아내지 못합니다. 파리가 와서 양의 코에 알을 놓으면, 구더기가 생기면 코가 가려워 바위에 코를 박고 죽습니다.
그러니까 목자 없는 양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바로 목자 없는 양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열심히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금 덩어리나 은 덩어리를 나누어 주지 않으시고, 쌀가마니를 주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왜 입니까? 말씀이 가장 으뜸이 되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3사도 바울이 3년간 눈물로 목회한 에베소 교회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을 대,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32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신령한 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때에 임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1-3육일 약국의 김성오 사장님은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미자립 교회를 순회하며 전도하던 아버지의 봉급은 현금이 아니라 곡식이었습니다. 수업료를 제때에 납부하지 못해 복도에서 벌을 서기도 했고, 영양실조 탓에 등교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마산고 시절 등록금이 비싼 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공부해서 들어간 곳이 바로 서울대 약대(약학과)였습니다. 봉천동 산동네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성북동으로 가정교사를 나갔는데, 집채만 한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잔뜩 주눅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자에 대한 시기나 증오의 마음은 갖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저들에게도 뭔가 성공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배워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산시의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인 교방동에 4.5평짜리 약국을 개업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졸업 당시 동기의 다수는 유학을 떠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제약회사 연구소로 진출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먹고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약국을 열어야 했다. 그렇다고 번듯하게 약국을 차려줄 만큼 집안이 넉넉해진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시내 중심가는 임대료가 비싸서 보증금만 1000만원을 요구했다. 2부 이자를 주고 어렵게 빌린 600만원을 가지고 변두리에 4.5평짜리 약국을 열었다. 당시 약사법에 최소 면적의 기준이 4.5평이었다. 빌린 돈 600만원 중에서 200만원으로 약장을 마련하고, 300만원으로 약을 사서 진열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약장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빈 상자를 가져다가 약장을 채워 넣어야 했다. 약을 모두 채워 넣기까지는 꼬박 1년 6개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세대수가 적은 변두리이다 보니 골목에 손님(경영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환자’가 아니라 ‘손님’으로 규정했다)은 커녕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약국을 열었다는 소문이 났지만 초기에는 하루 20명의 손님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약사의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데도 찾아준 그들을 ‘은인’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먼저 인사에 신경을 썼다. 손님이 15°로 절하면 나는 30°로, 손님이 30°로 절하면 나는 50°로, 손님이 50°로 절하면 나는 90°로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섬김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친절과 정성을 다했다.”
보통 서울대 약대를 나온 약사들은 엘리트 의식 때문에 뻣뻣하다고 합니다. 그들과 비교할 때 교방동 육일약국의 ‘김 약사’는 돌연변이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 약사는 찾아오는 모든 손님의 이름을 외웠습니다.
이는 육일약국이 성장한 일화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4.5평 약국에 필요한 조명은 40W 형광등 6개만 충분했지만, 김 사장은 무려 25개를 설치했습니다. 야간에 어두운 마을 어귀를 비추고, 홍보 효과를 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마산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자동문’도 4.5평의 육일약국이었고, 누가 약국에 들어와 길을 묻기라도 하면 약사 가운을 벗어 제치고 목적지까지 손수 데려다 주었습니다.
또한 약국을 개업할 당시 빌린 600만원 모두 갚은 해에는 마을 초등학생들에게 남모르는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중심에 둔 경영 전략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육일약국은 곧 마산역 앞 약사 13명을 둔 기업형 약국으로 성장했고, 그 뒤 김 사장은 청소기 제조업체 사장을 거쳐, 지금의 ‘메가스터디 엠베스트’의 공동 사장이 되었습니다.
시가총액 1조 1천억원 회사를 이끄는 CEO 중 한명이 약사 출신, 그것도 시골에서 4.5평짜리 약국을 10여년간 경영했던 ‘약사’라고 합니다. 현재 온라인 교육 기업 ‘메가스터디 엠베스트’의 공동 대표인 김성오 사장은 4.5평 약국을 13명 약사를 둔 기업형 약국으로 키운 뒤, 온라인 교육 사업에 투신, 현재 유명 강사 손주은 사장과 함께 이 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1조 1천억원이라면, 국내 최고 제약회사로 평가받는 동아제약의 두 배 규모입니다. 이러한 회사를 이끄는 육일약국의 김성오 사장님은 가난한 시골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말씀이 그를 성공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크게 복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11월 20일 오전 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