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6: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인도 원주민이 선교사에게 와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얼굴이 빛나는 약을 제게도 좀 주세요.” 이 말이 이해가 안 되는 선교사님은 되물었습니다. “얼굴이 빛나는 약이라니요?” “선교사님, 시치미 떼지 마시고 좀 구해 주세요. 저는 압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얼굴에 언제나 환한 빛이 감돌고 있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얼굴은 늘 환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처럼 환하게 빛난 것은 얼굴에 무슨 약을 발라서가 아니라 은혜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하나님의 은혜만 가득하면 언제나 얼굴에 광채가 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은혜는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기독 신앙은 뚜껑이 열린 마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뚜껑만 열면 다 은혜를 받게 되는데, 교만하여 마음의 뚜껑을 열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수도 시설이 제대로 안 되었던 시대에 물이 귀한 동네는 소낙비가 내릴 때마다 처마 끝에 큰 장독을 놓고 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물로 빨래도 하고 세수도 했습니다. 그런데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독을 갖다 놓고는 그냥 들어왔습니다. 비가 그친 다음에 가니 한 방울의 물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뚜껑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언제나 은혜의 단비가 내립니다. 그래서 모두가 은혜를 받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에 가실 때에 은혜의 소낙비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마음의 뚜껑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으니,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의 소낙비를 가지고 가셨던 예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뿌려 주지 못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사 은혜의 단비를 뿌려 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모두 겸손히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 같은 마음이 없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척을 당하시고 고향을 떠나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6:7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가시지 않으시고 둘씩 둘씩 파송하시면서 “너희들끼리 가서 복음을 전해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은 증인의 숫자입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요8:17율법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두 세 사람의 증거가 없으면 죽여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신17:6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라고 (딤전5:19)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고 쉽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할 때 두 사람 이상의 증거로 증거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한 사람이 증거하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증거에 다른 사람이 확증하여 “아멘. 그렇습니다.” 하면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12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사도 바울은 바나바, 실라와 같이 다녔습니다. 복음 증거는 언제나 두 사람씩 증거를 세워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씩 둘씩 가면 서로 용기를 얻고 격려가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전도는 둘씩 둘씩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전도하러 그들을 보내실 때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주신 것이 있습니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나라에서 외국에 대사를 파송할 때는 권능를 줍니다. 정부에서 경찰서나 파출소에 경찰관을 파송하고, 도로에 교통 경찰관을 파송할 때에도 권능을 줍니다. 그래서 경찰관들은 거리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권능을 갖고 경찰의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경찰관들이 손을 들면 아무리 큰 차, 밀려오는 차들이 수백 대가 되어도 서야 됩니다. 이것은 나라에서 준 권능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에게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16:17-18이 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말이 발작해서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데 그때 한 사병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서 그 말의 고삐를 잡아서 나폴레옹을 구해 주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너무 감격해서 사병에게 자기도 모르게 “대위, 고맙소.”라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 말은 믿은 사병은 그때부터 대위 행세를 하고, 밤에는 사병 막사에 가지 않고 장교 막사에 가서 누워 잤습니다. 장교들이 “이 사람아, 자네는 사병인 주제에 왜 여기에 있나?”라고 하자 “나도 장교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사병이야. 왜 그래?” “아니요 나 대위요” “이 사람보게. 정신이 나갔나?” “아니요, 나폴레옹 장군에게 가서 물어 보시오.”
그래서 장교들이 나폴레옹 장군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막사에 미친 놈이 들어 왔습니다.” “아니다. 미친 놈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그 날로 그에게 대위 계급을 달아 주었습니다. 장군은 비록 실수로 한 말이었지만 책임을 지는데, 하물며 우리 주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23:19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하면 안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마4:7"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고전10:9여러분,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을 시험하여 약국에 가서 독약을 사다가 “하나님, 이 말씀을 믿고 마십니다.”하고 마신다면, 하나님께서 “잘 죽어라.” 하실지도 모릅니다. 독사가 있으면 피해야 하는데, 독사한테 “날 물어 봐, 나는 괜찮다. 날 물어 봐”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러나 부지중에 독사에게 물렸을 때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독사의 독에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행28:3-6부지 중에 무슨 독을 마셨다든지 뱀에게 물리면 주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10:19권능을 쓰지 않으면 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일 때마다, 복음을 증거 할 때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