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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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4:30-3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4:30-31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지, 눈이 어두운 할머니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할머니의 작은 숨결에도 다 날아갈 정도로 가볍습니다. 겨자씨 760개를 달아야 겨우 1g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겨자씨가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을 상징하는 씨앗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작은 것을 비유할 때는 겨자씨와 같다는 표현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7:20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지극히 작은 분량의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 믿음을 가리켜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면 나물보다 커져서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를 밭에 심은 후 몇 주간 동안 자라면 아무리 못 자라도 3m까지 자랍니다. 보통은 3-5m, 큰 것은 7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자씨가 다 자라면 많은 새들이 깃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겨자씨 비유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작게 시작되었지만, 결국 모든 열방이 모여들 수 있는 나라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지상의 교회가 지극히 작게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에 충만하게 펴지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데서 시작되어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을 이룬다. 그리고 큰 것을 이룬 그 속에 많은 새들이 깃들인다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1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게 시작해서 엄청나게 크게 거두어 들인다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위대함에 대해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류를 사랑한다. 인류를 위해 일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자기 옆에 있는 거지는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와 함께 사는 부인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민족을 사랑한다고 떠듭니다. 자기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교회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가장 위대한 것은 큰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고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강조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기는 일, 자존심 상하는 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 교회는 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섬기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곳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지극히 작은 엽전 두 닢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주린 자를 찾아가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벗은 자를 보고 옷을 주고, 병든 자를 돌아보고, 옥에 갇힌 자를 찾아보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천국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출발은 지극히 작은 고을 유대 땅 베들레헴인 것입니다. 화려하고 인기있는 장소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지극히 초라한 곳에서 태어나 가장 이름 없는 갈릴리에서 자라신 예수님, 역사는 이 예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를 보면 학벌도, 지위도 없는 어부들이었고, 숫자도 많이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전부를 이들에게 쏟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도 괜찮은 일류학교, 직장도 누구나 인정해 주는 최고 직장에 다니려고 합니다. 의미 있는 것에 시간을 바치지 시시한 데에는 시간을 바치지 않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천국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내 마음에 천국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고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천국은 이루어집니다.

초대 교회가 얼마나 미미하였습니까? 120명으로 시작된 초대 교회 교인들은 핍박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고, 감옥에 갇혔고, 사자에게 먹혔습니다. 그러나 모진 학대와 고난을 받으면서 초대 교회는 잡초처럼 자라났습니다. 3,000명이 모였습니다. 남자만 5,000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무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장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생애를 살게 될 것입니다. 나 같은 두뇌 조건과, 나 같은 건강과, 나 같은 여건을 가진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생애를 살 수 있는 그 능력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배운 것이 부족하다고 한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진 것이 적다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안된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작은 일, 사람들이 보기에 시시한 일을 한다고 한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작은 일에 맡겨졌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을 맡는 순간에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을 맡은 사람에게 천국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2천국은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갑자기 방언을 받고 기가 막힌 은혜 속을 지나면 그 다음날 천사가 된 줄 압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게 계속적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셨듯이 우리가 신령한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만 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는 어제의 사람이 아니며, 과거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이 중요하고,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허물을 벗듯이 날마다 날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과거를 벗어버리고, 새롭게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날아가는 것처럼 하늘을 향하여 새롭게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비록 과거에 무슨 죄가 있었다 할지라도 무슨 허물이 있었고, 상처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벗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옷을 벗어 버리듯이, 그 허물을 벗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형상을 닮을 때까지 우리는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는 온전하여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도 거룩하여 질 것입니다.

성장과 변화, 이것이 바로 겨자씨 비유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그러나 하루도 쉬지 않는 변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성장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겨자씨 안에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천국은 성장과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무식하다고 아이를 놓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회 오래 다닌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직책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뿌려져서 접촉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에 접촉이 되면 반드시 변화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임신이 되면 반드시 변화가 옵니다.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변화됩니다. 처녀는 똥을 못 만집니다. 그러나 엄마가 되면 만집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때에는 느껴지지도 않지만, 끊임없이 꾸준히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숲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그들은 100년 전에 한국에 찾아와서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100년 후에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그 한 사람의 헌신이 중국을 변화시켰고, 윌리엄 케리, 한 사람의 헌신이 인도를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야 합니다. 만약 내 안에서 생명이 자라지 않았다면 우리의 마음은 가시밭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돌밭이나 길가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옥토일 것입니다. 천국은 쑥쑥 자라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게 화려하게 자라지 않습니다. 천국은 언제나 조용히 자랍니다. 식물을 보십시오. 낮에 태양을 흠뻑 받아서 밤에 조용히 자랍니다. 성장과 변화란 매일매일 조금씩 그러나 변함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변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지금 교회에 나와 있다고 하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화려한 것을 찾다가, 가장 화려하지 않은 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을 사모하다가, 가장 유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고, 세상에서 조롱하는 것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는 사람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천국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언제나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씨앗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열매입니다. 자란 나무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새들이 깃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설명하신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작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지금 작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겨자씨 같아도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나 홀로 라고 낙심하고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내 안에 뿌려진 겨자씨 같은 말씀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마련하십시오. 그리하면 언젠가는 겨자씨가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는 천국의 영광, 천국의 풍요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것에 관심 가지십시오. 환경에 대해 원망하지 마십시오. 현실에 비관하지 마십시오. 비록 어려운 환경이라도 그 안에 말씀이 뿌려지면 미래는 밝은 것,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4:33-34

왜 비유로 말씀하시나요? 성령을 받은 사람은 비유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야기로 생각할 뿐 비유 속에 감추인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비유로 들은 말씀은 두고 두고 기억이 나서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2022년 10월 30일 오전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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