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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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4: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 당시에는 물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전등불이 없었습니다. 등불을 많이 켰습니다. 등불은 참 어두웠습니다. 불을 밝히려고 아무리 심지를 높여도 그을음 만 생길 뿐 별로 밝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등불은 켜서 등잔 위에 두는데, 등잔 밑은 언제나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건물 구조는 방이 아무리 커도 창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 창의 크기가 아주 작았습니다. 창의 한 변이 50Cm를 넘지 않았습니다. 큰 집에 창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 방이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그래서 한낮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도 등불을 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친숙한 등불을 갖고 설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가 쉽게 번역을 하겠습니다. 평상은 침대를 말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는 것은 말 아래나 침대 밑에 두려는 것이냐 등경 위에 두려는 것이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대답을 유도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스토리를 줄여서 썼기 때문에 대답이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 제자들이 ‘등경 위에 두기 위함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 아래’라고 말씀하신 ‘말’은 무엇입니까? 외국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말이지만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린이는 본문 말씀을 듣고 ‘말 아래에 등불을 두면 말이 바비큐가 되고 말텐데..’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말은 제가 지금 입으로 말하는 말이나, 동물 말이 아닌 됫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은 큰 됫박인데, 열 되를 되어야 한 말이 됩니다. 제가 어릴 때에 보면 등잔이 없으면 말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등불을 놓아서 방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등불은 등잔 위에 두거나, 말 위에 둡니다. 등불을 평상 아래나, 말 아래에 두면 말에 가려서 방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캄캄한 방을 밝히기 위해서 불을 켜는데, 어느 어리석은 사람이 등불을 평상 아래나, 말 아래에 두겠습니까?

사람에게 등불을 가져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조그마한 등불입니다.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조그마한 등불을 주셨는데, 등불을 주신 것은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드러내려고 한 것입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4-16

우리는 착한 행실로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남편은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피곤한 아내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 또한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는 남편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은 등불같이 부모님의 얼굴을 밝게 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의 얼굴을 밝게 해 주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직장에 가면 직장 동료들이 나를 보는 순간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디엘 무디가 이발소에 가면 이발소가 환하게 밝아졌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어디를 가도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등경 위의 등불같이 촛대 위의 초같이 가는 곳곳마다 빛이 나야 됩니다. 내가 가는 곳에 빛이 나서 세상이 다 알아야 합니다. 밤에 빛이 나면 세상이 다 압니다. 이런 삶이 살아있는 성도의 살입니다.

내가 가도 빛이 나지 않으면 나는 말 아래 둔 등불입니다. 우리 안에는 빛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을 발하지 못하는 성도는 그 안에 생명이 있고, 불은 있으나 말 아래 둔 등불, 침상 밑에 있는 등불과 같습니다.

침상 밑에 있는 등불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침상 밑이나마 밝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 아래에 있으면 전혀 밝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말 아래에 있지 않고, 침상 밑에도 있지 않고 등경 위에 있는 등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등경 위에 있는 등불, 말 위에 있는 등불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1복음을 전함으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세상에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등불을 들고 다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가지고 나가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라는 의미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요일1;3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그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4

"교회는 그의(예수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23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든지, 예수님을 자랑하든지, 교회를 자랑하는 것은 우리가 빛을 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약국을 경영하시는 한 집사님은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라는 찬송을 부르다가 ‘아이고, 나는 내 집 근처 다니면서도 전도하지 못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옆집에서 철물점을 하시는 철물점 주인에게도 전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철물점 주인은 성격이 굉장히 까다롭고 거칠고 무뚝뚝해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라도 전도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용기를 내어 찾아갔습니다.

‘정형, 예수 믿읍시다.’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한 번 쓰윽 쳐다보더니 피우던 담배만 계속 피우면서 인상을 썼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정형, 다음 주에 교회에 같이 갑시다’라고 했더니 ‘한 번 가 봅시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분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너무 놀랍고 기뻐서 ‘다음 주일에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주일이 되어서 철물점으로 갔는데, 그는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형, 오늘 교회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아, 미안합니다. 오늘은 내 아내도 외출 중이고, 나도 교회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다음 주에 가지요.’

‘아닙니다. 오늘 가십시다.’

‘준비도 안 되었습니다. 아직 세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일어나서 세수를 하더니만 따라 나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서 돌아오면서 너무 기뻐서 ‘다음 주일에 제가 또 모시러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음 주에는 내가 내 아내를 데리고 교회에 오겠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지금은 집사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저술가요 부흥사인 워치만 니가 청년 때에 열심히 전도해도 안 되니까 고민하다가 어느 선교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해야 됩니다. 그냥 전도하지 말고 당신이 전도하고 싶은 사람 이름을 수첩에 적은 다음에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하면서 전도하시오’

그래서 워치만 내가 자기 친구 70명의 이름을 다 수첩에 쓰고 한 사람 한 사람 부르면서 기도했더니 3개월 만에 69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여수에 사시는 한 장로님은 간이 자꾸 굳어 갔습니다. ‘아, 나는 죽겠구나. 간경화가 되면 낫는 경우가 없다던데 나도 죽겠구나. 그런데 내가 장로가 되어서 전도도 한번 옳게 못했으니 정말 부끄럽구나. 이제는 죽을 때까지 전도나 하자.’하고는 매주일 오후 4시만 되면 전도지를 갖고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지 너무 기쁘고 신바람이 나서 계속 전도를 하는데, 이상하게 검고 노랗던 얼굴이 자꾸 희어지고 핑크 빛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전도만 하려고 전도를 하는데 몸에 생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 간이 깨끗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김정준 박사님도 폐결핵으로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이제 신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으니 전도하자. 죽을 때까지 전도하자.’라고 결심하고 마산 결핵 요양소에서 방마다 다니며 결핵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전하다 보니 자기 결핵이 깨끗하게 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내가 살고 이웃이 살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우리 생활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7-8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러분, 하나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빛의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9

착하고 살고, 의롭게 살고, 진실하게 살면 그것이 우리 생활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우리가 선하게 사는 것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둡게 살면 빛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구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풍랑이는 바다, 파도치는 바다에도 경계가 있는 것처럼, 죄악의 풍파가 밀려오는 세상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와 경계를 짓고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입의 말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 입의 말을 들어보면 ‘아, 저분은 하나님의 사람이구나.’라고 알도록 우리 입의 말이 해맑고, 깨끗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거짓말이 있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 입의 노래가 거룩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 입의 노래가 음탕하고 방탕하고 세상의 썩은 것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벌과 파리는 다릅니다. 벌은 절대로 더러운 곳에 앉지 않습니다. 벌은 꽃에 날아가서 꿀을 즐깁니다. 그러나 파리는 꽃을 싫어합니다. 더러운 곳을 좋아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벌이 되어야 합니다. 벌이 즐기는 것이 다르고 파리가 즐기는 것이 다르듯이 우리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놀이를 해도 달라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화투를 치면 안됩니다. 즐기는 것도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즐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만 즐기시지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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