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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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4: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막4:1

예수님이 때로는 회당에서 때로는 바닷가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에는 대게 고급인사가 옵니다. 사회적으로 지식인, 하이 클래스인 사람들이 회당에 와서 하나님을 섬겼는데, 회당에서 가르치시면 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반발했습니다. 인텔리들이기 때문, 그러나 바닷가에서 가르치실 때에는 반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회당이 오지 못하고, 바닷가에 가시면 수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들이 몰려 올 때에 바다로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께서 바다에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었습니다. 왜? 마이크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서. 큰 무리를 향하여 설교하려면, 음향 효과를 위해 갈릴리 호수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명경같이 맑습니다. 그래서 음파가 바다에 부딪혀 산울림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말씀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서로 예수님을 만져 보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향 효과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야 육성으로는 수만 명에게 설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혜로우신 예수님은 자연 환경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막4:2

예수님의 소문이 나자,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늘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예수님이 비유를 많이 쓰셨습니다. 딱딱하게 철학적으로 강의하면 사람들이 듣다가 졸고, 들어도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절대 졸지도 않고,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애들도 이야기할 깨 하면 조용해집니다. 저희들이 군에서 훈련 받을 때, 고달픈 훈련을 받다가 강의 시간만 되면 다 꾸벅꾸벅 좁니다. 그러나 교관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하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 깊이 자리 잡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비유를 들어서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성령 받고 나니까, 하나도 잊지 않고 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복음 증거에 비유를 많이 쓰신 것입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막4:3

들으라, 교회학교 어린이들은 떠들면서도 듣는데, 어른들은 듣는 것 같지만, 안 듣는다고 합니다. 꾸벅 꾸벅 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는 것 같은데,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엉뚱한 생각에 잡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몸은 여기 와 있지만 마음은 부엌에 가 있어서 가스불을 끄고 왔나 걱정하고, 저녁 반찬 걱정, 사업 걱정, 돈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안 듣습니다. 보기는 보아도 안 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보기 싫은 것은 안봅니다. 아무리 요란해도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입니다.

들으라, 관심을 기울여라. 귀를 기울여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을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기독교는 듣는 종교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사55:3

우리의 겉 사람 육체는 음식을 먹어야 삽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속사람,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세상의 책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몇 번만 읽으면 재미가 없어서 그것을 읽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천 번, 만 번 읽어도 읽을수록 늘 새롭습니다. 오늘도 이 양식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살찌우시기를 바랍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7-2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막4:4

우리나라 사람들은 씨를 뿌릴 때 골마다 고루 뿌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대 사람들은 씨를 뿌릴 때, 나귀 등에 씨 자루를 싣고 자루에 구멍을 몇 개 뚫어 놓습니다. 그러면 나귀를 몰고 갈 때마다 자루에서 뚫어진 구멍으로 씨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나귀를 이리 저리 몰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나귀가 가는 곳마다 산에도 씨가 떨어지고, 논두렁에도 씨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밭과 밭 사이의 아주 좁은 길이 경계선입니다. 또 그 길의 높이가 밭의 높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길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까, 아스팔트처럼 그 길이 아주 단단합니다. 그 길을 나귀가 한 바퀴 돌면 그 곳에도 씨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길가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새들이 와서 금방 쪼아 먹기 때문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잘 압니다. 시골에서 보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릴 때는 새들이 많이 따라다녀요. 씨를 뿌리는데 씨가 길거리에 떨어지거나 웅덩이에 떨어지면 그걸 줏어 먹으려고요.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어서 말씀을 증거하시는데 당시 사람들은 농부 아니면 어부였기에 이 비유를 잘 알아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막4:5-6

돌밭은 돌과 흙이 섞여 있는 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흙 밑에 바위가 깔려 있는 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산이 많기 때문에, 밭은 밭이지만, 산 가장자리의 밭은 밑에 바위가 많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밭은 흙이 얕습니다. 그런 밭에 씨를 뿌리면 금방 싹이 납니다. 그러나 밑에는 바윗돌이 있기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햇빛이 나면 말라서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식물은 태양 빛이 있어야 결실할 수가 있습니다. 일조량이 적으면 열매를 맺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면, 결실에 도움을 주는 태양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것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막4:7

가시가 무성하면 그 기운으로 인하여 곡식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곡식이 무성하면 잡초가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신앙이 왕성하면 불신앙이 와서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불신앙이 왕성하면 믿음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기도해야 하는 것은 신앙이 불이 붙어야 불신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꾸 흩으려고 합니다. 교회에 왜 모이나요? 집단으로 모이면 이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리스도가 함께하셔서 신앙의 열기가 왕성해집니다. 장작불을 끄려면 장작을 흩어버리면 됩니다. 신앙은 합치면 합칠수록 뜨거워지고, 흩으면 식어집니다. 따라서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고, 구역으로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막4:8

같은 씨를 뿌렸지만, 옥토에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깨달아야 할 주옥같은 진실이 있습니다.

1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었다고 모든 사람이 다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마음에 상태에 따라서 다릅니다.

내 마음이 길가와 같은 사람, 흙이 얕은 돌밭 같은 마음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10:12

주여 나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길가와 같은 마음을 깨뜨려 주시옵소서. 돌밭같은 마음을 개간해야 합니다. 부서져야 하고, 깨어져야 합니다.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염려, 근심, 유혹을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신앙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세상 근심, 걱정, 염려, 유혹을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2말씀을 들었다고 모든 사람이 다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천국의 비밀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와도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천국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3진정한 천국은 천국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은 죽어서 맛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은 막연한 곳이 아니라, 실제로 실존하는 곳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천국의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4:9

다 같이 귀를 가져도 이 말씀을 듣고 전혀 무슨 말씀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고, 듣고 깨닫는 귀가 있어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듣고,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못 들어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13:15-15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렘6:10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7:51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닫고, 회개하여 날마다 천국을 맛보며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10월 23일 오전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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