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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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1:9-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막1:9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이 자라신 곳입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2:19-23

예수님이 자라신 나사렛은 어떤 곳입니까?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1:45-46

나사렛은 유대 사회에서 세상의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하필이면 나사렛에서 자라셨을까요?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사는 곳인 나사렛에서 자라신 것은 죄인, 버림받은 사람, 멸시 천대,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종종 예루살렘에 가셔도 상층민이 사는 예루살렘에서 주무시지 않고 반드시 가난한 사람인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의 집에서 지내실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한 오리 되는 곳인 베다니로 가셔서 주무셨습니다. 베다니는 그 당시 빈민촌이었고, 지금도 빈민촌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가서도 낮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 되면 베다니 빈민촌에 가서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이 헐벗고 굶주리고 천대 멸시 받는 사람과 친구가 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올 수 가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예수님은 세상에서 인간쓰레기를 택하시고 구원하여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7:7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6-29

예수님의 출신 성분만 보면 온 예루살렘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세례 요한이 증거하였기에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러 오자 요한이 놀랐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3:13-15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지만, 온 인류를 대표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막1:10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물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침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침례를 행합니다. 그러나 약식 세례를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막에서 세례 받을 때 물이 없습니다. 물이 금같이 귀합니다. 그럴 때는 물을 찍어서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병들어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침례 받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물을 찍어서 세례를 줍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침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그때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오신 것이 보인 것입니다. 장관입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창조주 예수님이 피조물이요 죄인인 세례 요한에게 죄인처럼 되어 세례를 받는 것은 참으로 순종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죄인을 대표하여 죄인처럼 되어 회개를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셔서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신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왜 성령이 비둘기같이 오셨나요? 성령님이 인격자이지만 성령님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비둘기는 온유한 새입니다. 매 처럼 사납지 아니하고, 참새처럼 재잘거리지도 않습니다. 비둘기는 거름무더기나 배설물이 있는 곳에 있지 않고 깨끗한 곳에 있습니다. 성령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로 씻은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쉽게 놀라서 날아갑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쉽게 떠나가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성품을 가르치기 위해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0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비둘기처럼 온유하고 정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1:11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시고, 성부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어서 일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일거수 일투족 언어 심사 행동에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삼위 삼체를 주장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각기 개체로서 회담을 해서 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회의해서 일하다가 서로 의견이 달라지면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합니까? 세 분이 회의를 해서 일하다가는 언제 온 우주가 세 조각 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지만 일체가 되어 일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의 (세례 요한의) 증거, 성령의 증거, 아버지의 증거를 받게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오늘날 주의 종으로 서원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부르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2022년 9월 24일 오전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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