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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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21:14-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요21:14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변할 수 없는 진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말씀에 순종하여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하다가 오순절 날에 이르러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로부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빈 그물이자 빈 배의 인생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문제와 괴로움의 빈 배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빈 배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찾아오시는 예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게 만들어주시고,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21:15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로 되돌아가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다시 그들을 찾아가 만나주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요? 그 제자들은 평생토록 물고기를 잡다가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의 능력 있는 모습, 복음을 증거하는 불꽃같은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난 제자들, 도망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한번 더 찾아가서 만나 주셨기 때문에 사도가 되었고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주변에 낙심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가 한 번 더 찾아가고, 헌 번 더 권면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낙심한 자들에게 한 번 더 말씀을 증거하면, 주께로 돌아올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한 번 더 찾아가셨기 때문에 능력있는 제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찾아가야 할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할 때의 일입니다. 에디슨은 실험에 거듭 실패했습니다. 1,267번을 실패했다고 합니다.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낙심해 있는 에디슨에게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한 번만 더해봐라. 기왕이면 1,300번 채워봐라“

이 말에 힘을 얻어서 다시 시작한 1,268번째 실험에서 백열등 발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한 번 더 한다”는 것은 영혼을 살리는 일뿐만 아니라 이 세상만사에서 중요한 원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더’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한 번 더 만나기만 하면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고, 한 번 더 만나기만 하면 잃었던 사명을 회복할 상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가서 권면하고 일으켜 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신 다음에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먹이시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별다른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너희에게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밤새껏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여 피곤에 지친 제자들을 불러 숯불 가에 앉히시고 먼저 식사를 하게 한 다음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질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부분은 베드로의 호칭입니다. 마16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그 이후로 계속 베드로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시몬으로, 원점으로 돌아가서 부르신 것입니다.

베드로란 이름은 그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이 크게 칭찬하시면서 상급으로 주시듯이 주신 이름으로,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좋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부르시지 않고 옛날 이름인 시몬을 불렀을 때, 베드로의 마음은 얼마나 뜨끔했겠습니까? 사실, 물고기를 잡으러 다시 돌아온 그는 반석은 고사하고 돌멩이도 되지 못한 부끄러운 인생을 삽니다.

“시몬아!” 모든 메시지가 이 한마디에 다 숨겨져 있습니다. 이 한마디 말씀을 통해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무너져 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시몬아’하고 부르셨지만, 그의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으십니다. 왜 할 말씀이 없으셨겠습니까? 얼마든지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사랑이 뭡니까? 남의 아픈 점을 찌르지 않는 것, 잘못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다시 들먹이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웃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참 잘난 사람이 많습니다. ‘충고’라는 미명하에 남의 아픈 상처를 자꾸자꾸 들추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도 고치고 싶고 자기도 변화 받고 싶은데, 쉽게 안되는 부위를 자꾸만 걸고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기억해내어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알고 있고 기억이 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침묵해야 합니다.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고 나쁜 것만 기억하는 것은 사랑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로마의 강점을 여러 가지로 나열하고 분석했습니다. 그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패전에 대한 로마인의 태도에 대해서 말해놓은 부분입니다. 로마가 강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첫 번째가 전쟁에 패배한 장수를 절대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인은 명예를 제일 큰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공동체에서 자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최대의 수치를 여깁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그것보다 더한 수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더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의 처벌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놔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패배했던 사람이 그 다음에는 더욱더 분발하여 두 번 다시는 패하지 않는 강한 군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는 일벌백계의 원칙이 있었는데, 로마는 패배나 실수에 대해 관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재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았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로마의 강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맞는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또 한번 못질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면목 없어 하는 사람에게는 과거를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눅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아무 말 안하고 돌아온 아들을 받아 들였습니다. 만약 “너 그 돈 가져다 뭐했냐?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했어?”하고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면, 탕자는 다시 집 밖으로 뛰쳐 나갔을 것입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고, 친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사실 가장 아픈 사람은 그 당사자인 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픔 위에 또 다시 못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자신이 아픔을 느끼면 사랑으로 품어주면 됩니다. 그러면 본인이 거기서 어떻게 일어서야 할 것인지 먼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한 가지 확인하신 것이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랑 하나 만은 확인하셨습니다. 사랑 하나만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의 원인을 능력 부족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용기 부족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이 부족하다는 지적입니까?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실패의 원인은 사랑 부족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힘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은 없습니다.

세계적인 지휘가 정명훈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아노 실력의 80%는 연습으로 됩니다. 그러나 100%가 되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일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사랑하지 않으면 80% 이상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장 큰 일꾼이 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둥이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 앞에 능력을 구하기보다, 헌신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을 일등으로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랑은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도 소중히 여기게 만듭니다.

어떤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장로님이셨는데, 장로님이 직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어렵게 양품점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의 취미가 고상합니다. 사진 찍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아마 주위에서 보기에도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았겠지요. 부인은 엄청나게 고생하는데 남편되는 분은 한량처럼 카메라만 들고 놀러 다니는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하루는 장로님이 교회에서 멋있는 장면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기도하는 사이 카메라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카메라가 상당히 고가였다고 합니다. 카메라를 잃어버린 장로님은 속상한 나머지 밥맛을 잃고 시름시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권사님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빚을 내어서 전과 똑같은 거의 1,000만원이나 되는 카메라를 사드렸다는 것입니다. 주위 성도들의 반응은 한심하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야 저런 부인도 있구나’하며 부러워하는 성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권사님, 살림이 그렇게 어려우신데 도대체 그 비싼 카메라를 왜 사드립니까?”

“우리 장로님에게서 카메라를 빼앗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장로님의 최고의 낙이 카메라인데 그것 없이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겠어요?”

저는 세상에서 이것보다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고 봅니다. 최고의 사랑입니다. 남편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똑같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여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무시합니다. 남편이 텔레비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텔레비젼을 보고 있으면 꼭 전원을 꺼버립니다. 남편이 등산을 좋아해서 등산 가려고 하면 “산에서 죽은 귀신이 붙었느냐”며 악을 씁니다. 다 사랑을 못 받는 방법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해 줄 줄 아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그 소중한 양을 나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위하여 죽으신 이 교회를 사랑하는 이것이 바로 교회 사랑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감상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새 신자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어린 양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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