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2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제자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조그마한 그물에 153마리나 되는 큰 물고기가 펄떡거리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수고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앞을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고, 목이 타는 갈증을 체험했기에 큰 바위가 갈라지면서 생수가 솟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고생을 했기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컷 배불리 먹고 12바구니를 남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을 하였기에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자마자 낫게 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빈 그물을 가지고 밤새도록 고생하는 것이 절대로 헛수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일시적인 고통은 될 수 있고, 한동안의 눈물과 어려움을 되었을지 모르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면 그것이 도리어 영광스러운 고통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습니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펴 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묵상하면서 읽어보십시오. ‘아,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구나.’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빈 그물을 가진 자는 그 음성을 더 빨리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펼쳐서 성경을 읽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갈급함의 차이입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같이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어떤 사람은 시험을 받습니다. 갈급함의 차이입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구역 예배에 참석하면 다른 형제자매들의 입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빈 그물의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인데’하고 마음에 걸리는 분은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빈 그물 인생이 되었다 해도 우리 곁에 오시는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과거에 돈이나 명예로도 살 수 없었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생의 빈 그물을 가득히 채우는 새로운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예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균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어떤 분은 대학생 때 들었던 강의 중에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 강의가 있다고 합니다. 오화섭 교수님의 희곡 강의라는 것입니다.
오화섭 교수님은 당시 연세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였는데, 한 학기 동안 그 분이 다니던 성균관 대학교에서 희곡을 가르쳤습니다. 아서 밀러가 쓴 ‘세일즈맨이 죽음’이라는 유명한 희곡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그 분은 어릴 때부터 청교도적인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연극 하면 귀를 막는 사람이었습니다. 연극이나 드라마니 춤이니 하는 것들은 완전히 타락한 예술이다. 다 마귀가 작당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자랐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 교수님의 강의가 그를 완전히 매료시킨 것입니다. ‘아, 드라마가 이런 것이구나.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예술이라는 것이 이렇게 파워가 있구나.’하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화섭 교수님에게는 아주 총명한 딸이 있었습니다. 오혜령 씨인데, 연세대를 나와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희곡 작가로, 방송인으로, 또 수필 작가로 당시에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숱한 소년 소녀들의 편지나 엽서에 그녀의 글귀가 인용될 정도로 사랑받는 작가였습니다. 그가 빈 그물 인생의 아픔을 겪은 후에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책을 내 놓았습니다.
그는 미션 스쿨에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흔히 똑똑한 지성인들이 잘 빠지는 길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안 믿으려 하고, 신앙생활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나 매달리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곁길로 가는 그런 사례들 말입니다. 한 마디로 교만한 것입니다.
그도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자기 과신 때문에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위암과 임파선암을 진단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 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자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했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매주 그에게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 50송이를 보내 왔습니다. 그는 반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낚아채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정신을 잃고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이 자기를 찾아오신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주님께서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이십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까지 따라오시는 것입니까? 그 말을 하고 나자 그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십 개의 양초가 녹아내릴 때까지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혼자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온 몸에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왔구나’ 그는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깨에 나 있었던 복숭아 씨만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고, 복수로 차 있었던 배도 완전히 꺼져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주님께서 두 번째로 자기를 찾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그의 그물은 고기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가 쓴 글이 있습니다.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 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비록 저희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당신을
지금 당장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당신께 대한 신뢰 속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각오가 설 때
저희 행위에 방향과 성취가 부여됩니다.
당신은 가장자리에 계시지만
늘 저희에게 그물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던지라고 분부하고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날마다 호숫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말씀에 의지하여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한 자매가 있습니다. 로라 윌킨슨이라고 하는 자매인데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다이빙 여자 10m 플랫폼 여자부’에서 36년 만에 미국에 금메달을 안긴 자매입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중국’의 강세가 지속되었고, 결승전에서 1, 2위를 다툰 것도 중국 선수들이었습니다. 모든 카메라 앵글이 중국 선수들에게 맞혀져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16살 때 다이빙에 입문한 ‘늦깎이 무명 선수’요, 또 ‘부상 선수’였습니다. 올림픽 출전 6개월 전, 연습하다가 ‘오른쪽 발가락 3개’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수주일 동안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야 했습니다. 올림픽 후에는 또 수술 받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결승전’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만족했고, 다행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결승전까지는 5번 뛰어 내려야 하는데. 결승전 1차, 2차전에서도 ‘5위’를 했습니다. 선두와 점수 차이도 ‘60점’ 차이가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 역전극이 3차전부터 시작되는데, 3차전에 ‘최고 점수’로 1등을 하더니, 4차전에서도 1등을 했습니다. 취재진과 관객들이 술렁거렸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녀가 붙잡고 의지한 말씀,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녀는 뛰어 내릴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고 뛰어내리는데 하나님이 역사해 주셔가지고 그녀의 목에 ‘금메달’을 걸게 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녀는 취재진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발가락이 부러진 날, 저는 ‘제 꿈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셨습니다! 올해 목표는 메달이 아니라 단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었는데, 그냥 메달도 아니고 ‘금메달’을 따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월드컵대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 간증을 하고, 또 아이를 중국에서 입양해서 세 자녀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 올케가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2022년 9월 10일 오전 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