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21: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21:3본문에서 우리는 먼저 사도 베드로의 무척 한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신 목적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18-20베드로는 명색이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그런데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도 다시금 옛날처럼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장면이 또 있을까요?
교인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년 동안 말씀으로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이 되기를 기대하고 십자가의 군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나서 다시금 옛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이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시쳇말로 말짱 도루묵입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이 지금 베드로의 모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베드로만 고기 잡으러 간다고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의 동료 제자들도 같이 따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오십보 백보요, 도토리 키재기더란 사실입니다.
"보면 베드로를 따라 고기 잡으로 간 사람이 7이나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베드로, 그 다음에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제자 둘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를 포함해서 도합 7이 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말입니다."
요21:2을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7명 전부가 원래부터 어부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분명히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도마와 나다나엘은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를 따라간 것입니까? 남이 간다니까 부화뇌동하면서 따라간 것입니다. 생각 없이 따르는 인생이었습니다. 편승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실제로 자기의 목적이라든지 사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남들이 하는 대로 생각없이 편승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편승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붙들어야 합니다. 이사야의 사명을 가진 분은 이사야의 사명을 감당하고, 여호수아의 사명을 가진 분은 여호수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니엘과 같이 정치의 사명을 받은 분들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하는데, 이 베드로의 친구들은 친구가 실족하는 길까지도 따라갔습니다. 잘못된 인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기 사명에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 신실하던 베드로가 왜 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면서 디베라 바다로 떠나갔는지에 대해 한번 추측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진짜 예수님의 대한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고기 잡으러 간다고 말했다기보다는 예수님을 만나볼 면목이 없어서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는데, 다시금 예수님께 나아가서 “내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하고 말한 만큼의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닐까요?
왜 그렇습니까? 남들이 도망할 때 자기도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부인할 때 자기도 부인했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실 때 깨어서 기도하는 척하지도 못하고 졸기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면목으로 주님 앞에 서겠습니까?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 그러면서 디베랴 바다로 간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면목이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도, 은혜를 다 헛되이 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지극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닙니다. 진짜 그렇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나는 진짜 자격이 없어요. 나는 너무 죄를 많이 지어서 도저히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이렇게 아주 겸손하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것이 겸손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가 잘났다고 떠드는 교만한 사람이나 또는 자기는 부족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제게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하면서 주님을 붙드는 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뻔뻔스럽게 주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구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사람이 뻔뻔스러워집니다.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어요. 윗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다니면서도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입에 술 냄새를 풍기면서도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뻔뻔한 사람들입니다. 제일 뻔뻔한 사람이 목사입니다. 목사가 거룩하게 사는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은 연약함이 있고, 교만이 있고, 죄성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보다 저는 열 배, 백 배는 더 뻔뻔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상에 올라가서 말씀을 증거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죄인이고 부족하지만 그 모든 죄악을 덮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마음으로 은혜를 바라보기 때문에 뻔뻔스럽게 강대상에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제일 뻔뻔스럽습니까? 제가 볼 때 어머니께 제일 뻔뻔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머니께 그렇게 잘못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그 앞에 나아가서 손 벌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감히 못 나갑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다시 찾아갈 수 없습니다. 뻔뻔스럽게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는 사람의 첫 번째 모습은 비록 죄짓고 불의하고 못하고 잘못했을지라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품어주시고 용서해주시는 주님께 뻔뻔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3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지도자 역할의 중요성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리더 격인 베드로가 갑자기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며 나서자 다른 제자들도 너나없이 따라나선 것입니다. 사람은 군중 심리에 따라 행동하게 마련입니다. 평소에 확신 있게 행동 못하고 머뭇거리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가 누군가 한 사람이 이끌면 그대로 따라 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유감스럽게도 옛날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그를 따라 갑니다. 리더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만약 그 리더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사람이라면 주위의 상황을 정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리더가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며 상처투성이의 사람이라면 주위에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십자가와 부활만으로 세상을 이길 육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옛날로 돌아가 버립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통해 보면, 십자가와 부활을 보고도 맥을 못 춥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십자가와 부활만으론 능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자동차가 있어도 기름을 넣고 시동을 걸어야 달릴 수 있듯이,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 위에 성령님의 임재가 있어야 죄악과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실질적인 변화는 오순절에 성령님을 체험한 후부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을 받은 후부터 순교자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경 공부도 중요하고 제자 훈련도 중요하지만, 성령 충만의 역사가 더욱 중요한 것이 됩니다. 고압선이 설치돼 있어도 전원과 연결돼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서로 연결되었을 전류가 흐르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3예수님을 떠난 인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절 마지막 부분에서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좋게 보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답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곤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어도 고기를 많이 잡았으면 그렇게까지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런데도 지금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서도 자신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습니다. 결국 저들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15:5에지금도 많은 교회와 많은 사역자들이 이런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교회가 부흥하는 길, 교회가 살아나는 길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가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교회가 살아서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마9:29교회를 살리는 또 다른 방법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모든 심령들을 살린다고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 이것을 떠나는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영혼들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와 말씀은 등한히 하면서 엉뚱한 일에 매달려 있습니다. 모슨 행사에 초청장을 밤새도록 만들고, 공연 준비를 한다고 소란을 피우고, 모이는 장소를 아름답게 꾸미느니라 시간을 다 보내고 - 이것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방법인 줄 알고 열심히 뜁니다. 얼마나 분주하고 바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매는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때에는 주님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주님의 방법으로 일하고 있습니까?”
열심히는 뛰고 있는데 자신에게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고 능력도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이 지금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서 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말씀으로 자기 영혼을 비추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룻밤이 아니라 열흘 밤낮을 그물질한다 해도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단지 배의 폭 정도의 차이뿐이었습니다. 배를 사이게 두고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하는 그 작은 차이가 결과적으로 엄청남 차이를 낳았습니다. 세상은 열심히 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승리가 임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 지혜를 가지고, 내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 드리고 당장이라도 새벽 기도를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실 때 베드로가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부활 이후에 물고기 잡는 기적을 한번 더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부활 후에 주님과 함께 그 제자들이 다 천국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이 땅에 남겨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열심히 그물질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살리는 사역에 힘써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 스페인 선교, 아프리카 선교, 중국 선교, 선원 선교로 열심히 그물질함으로써 많은 영혼들을 건져내어 항상 만선으로 돌아오는 일등 선장, 일등 어부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