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0-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공생에 기간 동안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 중에서 7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0-31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표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이 기적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니고데모)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3:2"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요10:36-38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이 7가지 표적을 기록한 목적,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무엇이며, 성경을 기록된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성경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어떤 목적으로 성경을 보아야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명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말씀의 관계로 이루셨습니다. 동물은 잡아끌면 되지만, 사람에게만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를 읽다보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갖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먹지 말라고 금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선악과를 만들지 마시든지, 만드셨으면 먹지 못하도록 분명히 어떤 대책을 세우셔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이 먹지 못하도록 하신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오묘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관계”라고만 말하기에는 사실 말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냥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와의 관계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자유를 주시면서 동시에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주셨습니다. 선택은 자유이며,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으되, 선택 다음에 되어지는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존재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란 이러한 의미에서 대화적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 일은 불행합니다. 즐거움으로 해야 행복합니다. 과연 나는 지금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 일이 얼마나 되나 생각해 봅시다. 내가 사는 삶의 전체가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 삶이 되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낳았으니 할 수 없어서 돌봐주고, 결혼을 했으니 할 수 없어서 함께 산다면 그것은 모두가 비인간화되는 순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인간적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나는 지금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고, 순종할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는 순종합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 순간만이 내가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도록 귀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귀한 가치를 스스로 빼앗기고 부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이러한 인격적 관계로 이루어졌다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섭리하시며, 말씀하시고, 우리를 감동 감화하시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 때부터 성부, 성자, 성령님은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고, 성령님은 물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오늘도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똑같은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말씀의 대상으로서의 인간, 그 속에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라고 할 때 우리는 입으로 주고받는 말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이란 범위가 아주 넓고 깊습니다. 말씀의 원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우리가 지금 주고받는 말은 그 말씀의 몇 백만분의 일의 아주 조그마한 그림자입니다. 사람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말을 합니다. 말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으로도 말을 하고, 몸으로 말을 하고 (Body language), 인격으로도 말을 하고, 침묵으로도 말을 합니다.
5가지 사랑의 언어 (게리 채프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들마다 사랑의 언어는 다르다.'쯤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오랜 시간의 상담과 연구를 통해 왜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원하면서, 심지어는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실망하고 헤어지기까지 하는지에 대해 원인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안합니다. 저자의 결론은, 사람들마다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대화가 통하지 않고, 상대방이 내 진심을 몰라줘서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어들을 연구해보니, 결국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인정하는 말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줄 때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2함께하는 시간
이 유형은 여자들에게 좀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이런 유형은 대화를 중요시합니다. 아니, 대화 자체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집중하고 공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 더 낫겠네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과는 함께 대화하면서 산책하거나 커피 한잔 하는 것이 좋겠지요? 핸드폰 보는 것은 절대 금물이겠구요!
3선물
사실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작은 선물에도 감동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왠지 부담스럽군요)
4봉사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일을 해 줄 때 (부부관계라면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그런 것들이겠지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확 받게 되는 사람들이지요.
5스킨십입니다.
깊게는 성관계에서 작게는 살짝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입니까? '나는 이거네.'라고 감이 오시나요? 그러면,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그것도 감이 오시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부부 사이에도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지낸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사는 데에 익숙해져 버렸고, 어떤 사람들은 결국 오해로 인해 싸우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언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알아내고, 그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스킨십을 잘 하지 않았던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스킨십이 사랑의 언어인 배우자를 만나면 정말 어색하고 힘들겠지요. 하지만 외국어처럼, 사랑의 언어도 연습을 통해 점점 더 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