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4-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도마를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도마가 쌍둥이라는 뜻을 가진 아람어인데,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디두모가 되기 때문입니다. 도마를 디두모라고 불렀던 것은 게바를 베드로라고 불렀던 것과 같습니다. 25절을 보면 이 도마가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언할 때 냉소적인 말을 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고 증거해도 도마는 믿지 않겠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눈으로 보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의 손바닥에 난 못자국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보고 옆구리에 난 창 자국에도 직접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확인이 돼야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도마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가장 완벽하다. 나는 실수가 없다. 나는 확실하다’라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잘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왜 생각 없이 믿나? 왜 쉽게 결정하나? 저들은 너무 감정적이야’라고 생각합니다.
도마의 경우는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도마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벌써 예수님을 떠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도마가 예수님의 제자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도 좋고 예수님도 좋은데, 결정적인 믿음을 유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도마의 믿음 상태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굉장히 옳다는 아집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도마가 예수를 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도마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죽음도 잘 알았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존재나 삶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부인한 것은 부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삶과 죽음까지는 인정합니다. 예수의 삶은 성자의 삶이었고, 그는 지극히 높은 도덕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부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의 완성은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7도마의 문제는 예수님의 죽음까지는 인정하겠지만 부활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성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사람이 지금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죄를 씻어주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 상식으로 생각할 때 믿지 못할 이유가 넘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어집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분은 살아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오늘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고, 밝은 빛을 주십니다. 철학, 윤리나 도덕이 한 인간에게 이것을 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에 대한 중요한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까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12-20도마는 부활의 문제에서 걸렸습니다. 그런데 왜 도마는 이 사실을 믿지 못했을까요? 중요한 힌트가 24절에 있습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20:24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이런 고민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빠집니다. 은혜 받을 때에는 빠지고 쓸데 없는 데에 열심을 냅니다. 꼭 설교를 들을 때 조는 사람이 있고, 중요한 말을 할 때 귓등으로 흘려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J. C. 라일 목사는 ‘도마의 의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정규적으로 모이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은지 아십니까? 우리가 별다른 이유 없이 놓친 그 설교가 우리의 영혼에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참석하지 않은 그 찬양과 기도 모임이 우리의 마음을 격려하고 굳세게 하고 북돋우는 모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의심하게 된 것은 제자 공동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첨석하지 않은 많은 예배와 공동체 모임이 우리가 은혜 받고, 회복되고, 기적을 체험하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와 공동체 모임에 참석하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실 때 거기 있어야하고, 은혜를 주실 때 그 자리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두번째, 도마가 부활을 믿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영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다시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상황을 잘 모르고 한 말입니다. 때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앞뒤를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적이 또 한번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이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예수가 다른 모든 성인들과 다른 것은 부활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부활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것을 믿을 때 구원은 완성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구원을 잃을 뻔한 도마를 예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구원을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면 그것이 선물인 것을 압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감격이 있고 겸손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