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개척 초기에 겪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이 목사님이 심방을 가면 심방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그 집안의 어떤 물품을 화제삼곤 했다고 합니다. 좋은 그림이 걸려 있으면 “그림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림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마루에 좋은 오디오가 있으면 “음악 애호가이십니까?”라고 물으면서 그 오디오 세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초신자 집에 갔더니 거실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단지 큰 장식장 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병들이 빼곡이 진열되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마땅히 화제로 삼을 만한 것이 없어서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댁에는 참으로 좋은 술이 많이 있군요.”

그랬더니만 예배가 끝나고 식사를 함께 나누는 자리에서 그 초신자 자매님이 술병을 가져오더니 “목사님, 이게 아주 비싸고 좋은 술인데 한 잔 드십시오”라며 권하더라는 것입니다. 마음 상하지 않게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 목사님이 자기 평생에 교인 집에서 술을 권해 받기는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술을 권하던 자매님이 지금 권사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신자일 때는 이런 실수가 있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진실함이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신앙의 연조가 깊어지면서 신앙이 자꾸만 피상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인이 되어갈 때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를 오래 믿으면 마귀가 된다.”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신앙생활을 오래하는 가운데 피상적인 신앙이 되고, 또 형식적인 신앙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연조로 따질 것도 아니고, 직분이나 경력으로 따질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진정으로 내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힘 있게 역사하고 있는가를 통해서만 확인해야 합니다. 신앙의 감동이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이 식어지는 것보다 더 큰 위기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궁금한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승리하셨을 때 제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제자들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습니까?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요20:9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지금 자기들의 스승인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대장 예수께서 우리의 대적 마귀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적 앞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앞에 무덤을 지키던 로마의 군병들이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대적 앞에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골리앗 앞에 벌벌 떨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신 이후에도 벌벌 떠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에서 이렇게 나약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까? 기도의 능력을 주셨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스스로를 패잔병같이 생각하면서 어둠 가운데서 문을 걸어 잠그고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안식 후 첫날을 주일로 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제자들을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그들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20절 하반절을 보니까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기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은 저들에게 큰 절망이었다가 부활하셨으니, 사실 기쁠 정도가 아닙니다.

만약,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제자들도 죽을 운명이 곧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스승이 죽었으니, 그 화가 자기들에게도 곧 미칠 것 같아 벌벌 떨며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노크도 없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문을 열거나 노크를 해서 문이 열려야 들어오지만, 지금 주님은 공간을 초월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비입니다. 부활은 영적이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입니다.

갑자기 나타나신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왜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셨습니까?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평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열 명이 넘는 장정들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창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때는 제자들의 기세가 등등했을 것입니다. 겁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스승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은 자신감과 용기를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군중들은 간사합니다. 한때는 ‘호산나’를 연호하며 그렇게 열광했지만 예수님이 맥없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모습을 보자 한 순간에 돌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험악한 분위기가 제자들의 주변을 점점 조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도 저렇게 비참하게 죽이는데 제자인 우리들인들 가만 두겠느냐’하는 생각이 들자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낮에는 물론이고 밤중에조차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그들은 첫날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한때 미국 주요 신문의 칼럼니스트이자 상담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어떤 사람은 한 달에 만 통 이상의 상담 편지를 독자로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기자가 그를 찾아와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은 공포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대학생들과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에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사역하는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20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고 상담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젊은이들에 관한 한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그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 5가지를 꼽으면서 공포를 일순위로 꼽았습니다. 겁 없이 인생을 살 것 같은 젊은이들에게 제일 큰 문제, 곧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고심하는 문제가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장래 문제를 놓고 마음 속에 은근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취직을 해야 되는데 앞으로 어떤 직장에 취직을 해야 되는가? 하고 걱정하다 보면 불안이 쌓이고 그것이 공포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 젊은 나이가 갑자기 암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공부한다고 다 졸업을 하지만 나중에 2,30년 후에 내가 성공하지 못하고 밀리면 어떻게 하나? 이런 가지각색의 생각을 하다보디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불안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포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마음에 두려움이 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그 모든 두려움을 사라지고 마음에 평강이 옵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예수 부활만 믿고, 예수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이 주지주의자가 됩니다. 그들은 성경을 너무나 잘 압니다. 내용을 환히 꿰뚫고 있습니다. 예수 부활에 대해서 성경 어느 곳을 찾아보라고 하면 쉽게 찾아낼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있어 예수 부활이란 어디까지나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입술만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형식적인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입으로는 예수 부활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예수 부활의 능력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치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화 벤허의 원작 소설을 쓴 윌러스는 그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렴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친구가 들려준 한마디 비관적인 말 뿐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얼마 후에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추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벤허를 쓰기 위해서 그 배경이 되는 시대를 알아야 했기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중에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일어났던 변화를 벤허라는 주인공 인물 속에 고스란히 투영시켰습니다.

벤허는 원래 칼과 창으로 자기를 배신한 친구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간 사람이 누구입니까?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벤허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마다 다 변화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