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20:15-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요20:15

여기서 마리아가 그렇게도 사랑한 예수님을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1마리아가 찾는 것은 예수님의 시체입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시체를 찾고 있느니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눈 앞에 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2선입관 때문입니다.

이 근방에 동산 지기가 있다고 하는 선입관 때문에 “누굴 찾느냐”는 물음에 선뜻 동산지기로 착각하고 시체를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입관이란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3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그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상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무덤에 장사한 것을 보았으니 이곳에 시체가 있을 것이라는 상식에만 의존합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뵈지 않으면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 이성, 상식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온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영원불변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생기면 먼저 말씀에 입각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5:40-41

사도들이 채찍에 맞고 협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11-12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배경) 고후11:7-8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와지라고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에 표현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뉴욕대 부속병원 재활센터 벽에 있는 글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20:16

주님께서 "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부르자, 그 때에야 닫혀있던 그녀의 눈과 귀가 열렸습니다.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감격하여 “랍오니”라고 외쳤습니다. 랍오니 라는 말은 랍비여 하는 말보다 더 친근하고 다정한 표현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예수님을 마주한 기쁨과 감격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담아 랍오니라고 부른 것입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던 마리아가 부활을 주님을 만나자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두려움이 변하여 용기가 되었고, 도마에게는 의심이 변하여 믿음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기쁠 것이다 하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기쁩니다. 내가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런 체험이 따라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의로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볼 때도 예수 부활의 믿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절대로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악과 모순과 죄를 다 심판하실 날이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문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영육간에 괴로움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어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되는 날,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는 다 떠나갑니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보고 계십니까? 초대 교회 때에도 예수 믿는 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4:13-18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세상을 살기가 너무 힘드시나요? 어깨의 짐이 너무 무겁습니까? 그럴 때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모든 문제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가지고 해석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해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울아, 사무엘아, 모세야, 아담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인구가 수십억이니, 나 하나쯤이야 뭐 그리 중요할까?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를 개인적으로 부르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나 하나 만이 사랑하는 자인 것처럼 우리 모두를 부르십니다.

2022년 8월 27일 오전 6:24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