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19: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19:31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마이클 그린이 예수님의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비교하여 쓴 글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예수님보다 400여년 전에 부당한 판결을 받아 사약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는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한 점들이 있습니다.
둘 다 사람들로부터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둘 다 애매하게 죽었다는 점입니다. 또 둘 다 용기있는 사람들이어서 자기 자신의 안위나 평안한 삶보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진리에 대해 증거 할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믿고 있었고, 사후에 영생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소수의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이상과 같은 점들에서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마이클 그린 박사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죽었지만 예수님은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평소에 자기는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신의 사자라고 주장한 것에 반해 예수님을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 독약을 마셨기 때문에 몸이 서서히 마비되어 죽어갔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서서히 죽으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친구로 해석을 했으나 예수님은 죽음이란 반드시 정복해야 할 원수로 보셨고, 그로부터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의 원칙에 따라서 그것을 위해 죽었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죄를 가진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죽으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죽으면 영생한다고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멸망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구원하는데 공헌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세계 역사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평가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보면 두 사람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죽음으로서 선한 죽음이요, 감동을 주는 죽음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어떠한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담은 유일한 죽음이요, 오직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임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정확하게는 금요일 해 질 때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 입니다. 금요일은 유대 나라 사람에게는 안식일을 예비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 금요일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합니다. 특별히 유월절이 낀 금요일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거룩한 날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성 금요일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눈앞에 안식일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 전에 시체를 장례 해야만 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안식일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가는 구약 성경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안식일은 거의 일하지 않으므로 잘못하면 점심 굶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수천년 동안 내려온 전통입니다. 그러니, 2천년 전인 그 당시에 예수님의 시체를 밖에다 두고 안식일을 지킬 수가 있었겠습니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나무에 달려 있는 시체를 끌어내려서 장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던 시간은 사람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기에는 너무나 짧았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못 박히면 길게는 일주일까지 간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에는 보름 동안이나 살아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피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한 방울씩 빠져 나가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당하며 여러 날 동안 지옥의 저주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두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지 불과 대여섯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안식일에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놓게 됩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대제사장과 그 추종자들이 빌라도를 찾아가서 군사들을 보내서 그 다리를 꺾어 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왜 다리를 꺾어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는 호흡을 할 때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면서 가슴을 펴고 호흡을 합니다. 그러면 못 박힌 발의 통증 때문에 이내 다시 온몸이 밑으로 축 처집니다. 다시 말해 순전히 다리의 힘으로 호흡을 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부러뜨리면 더 이상 호흡을 할 수 없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21:23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유대인들이 다리를 꺾어서라고 빨리 죽여서 장사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로마식대로 한다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은 장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에 그대로 내버려두어 부패하게 하든지, 십자가에서 끌어내어 땅바닥에 집어 던짐으로써 새나 짐승이 뜯어 먹도록 합니다. 절대로 장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대제사장들에게는 빨리 장사해야 한다는 조금함이 생겼고 빌라도에게 달려가 그러한 요청을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한 이후까지 단 하나의 율법도 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율법을 지켰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율법을 지켰던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적인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적인 모습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외적 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을 바로 위선의 본질입니다. 위선은 가면을 쓰는 것이요, 외관을 치장하는 것입니다. 위선은 외부로 나타나는 모습에 만족하는 것으로 내면에 있는 것을 가리고 감추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 외의 어떤 것도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 아무 것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숨길 수도 없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이러한 위선은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를 비롯하여 교회 안의 지도자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양심이 병이 들어 거짓말 잘하고, 남을 미워하고, 못살게 구는 일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고난 주간을 잘 지켜야 한다. 고난 주간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동참하기 위해서 반드시 금식을 해야 한다. 는 등의 형식적인 일에는 유달리 법석을 떨며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불행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못해도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인데, 그들은 거꾸로 행동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