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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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29-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29-30

당시 신 포도주는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던 로마 군인들이 마시던 질이 낮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목 마르다’라고 말씀하시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입에 신 포도주를 조금 적셔서 드렸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 “그들의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시69:21)라는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마태나 마가는 ‘크게 소리 지르시고 운명하셨다“고만 기록하고 있지 소리 지른 내용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크게 소리 지른 내용이 바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요한이 그렇게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겁이 나서 멀찍이 군중 속에 숨어 가지고 아마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이 처형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은 대담하게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주님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함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신음하시는 주님의 그 음성이 귀에 들어오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6-7 시간을 진액이 빠지도록 고통과 싸우고 이제 초죽음이 되어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기 직전에 처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얼마나 크게 질렀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놀랠만큼 크게 질렀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까이에 있던 요한을 그 소리를 분명히 알아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다하여 말씀하신 한 마디 말씀에는 굉장한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에도 한 마디의 말이 모든 진리를 대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간결한 문장 하나가 어떤 사상을 전부 함축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을 움직이고, 역사를 흔들어 놓을 정도로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루터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한 마디를 가지고 기치를 높이 들자 중세기의 그 어두운 암흑이 물러가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링컨이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라는 한 마디 속에 담아 외쳤을 때에 북 아메리카의 여러 가지 혼란 상황이 하나하나 수습되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한 마디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도 유명한 한 마디를 내세웠습니다. “잘살아 보세”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린애 노래 가사 같은 짧은 구절입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정말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가난에 찌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잘 살게 만들어 열강 앞에 내노라 하고 얼굴을 쳐들고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까 하는 집념과 한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일을 했지 않습니까?

‘다 이루어다’ 하시는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다/ 이루었다’로 번역되어 두 마디이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테텔레스타이’라는 한 마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짧은 한 마디지만 그 안에 엄청난 하나님의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 높이가 깊이를 우리는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창세기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모든 내용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한 마디는 죽어 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지르는 외마디 비명처럼 들렸을지 모릅니다. 한 맺힌 절규처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나는 이겼노라. 나는 해내었노라. 나는 완주했노라”하는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는 말에는 3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1구약에 예언한 모든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눅24:25이하)

2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영원하고 장대한 계획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외치는 순간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막아 두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져 내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3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데 성공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다 이루었다’는 말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희생적으로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6-7시간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면서 비명 한마디 안 지르셨을까? 어떻게 6-7시간의 긴 고통 가운데서도 돌아버리지 않으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계실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런 장시간 동안 몸이 부스러져 내리는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까무러치지 않고 견디실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필리핀에 있는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직접 체험해 보겠다고 자기 손에 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발에는 박지 않고 양손에만 박았는데 그는 못을 다 박기도 전에 그만 까무러쳐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정신을 흐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안으로 흡수하면서 홀로 그 모든 고통을 견디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고통을 그렇게 감내할 수 있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강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 비명을 지를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은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사랑 없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까무러칠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까무러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한 것은 못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데 성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이 승리의 외침 때문에 엄청난 은혜를 입게 된 자들입니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장차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그 영광을 빼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의 입에서 그리스도의 찬송을 빼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는 이 외침 속에 하늘에 있는 모든 축복과 특권이 우리에게 다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십자가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우리가 십자가에 가까이 나가면 나갈수록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이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들릴 것입니다. 주님의 힘찬 외침 속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 외침 속에 우리의 환상이 있습니다. 그 외침 속에 넘어지는 자 같으나 일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그 외침 속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긍지와 만족이 있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다 이루었다“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쳐봅시다. 그 음성에 우리의 능력과 소망과 꿈이 있습니다.

2022년 8월 17일 오전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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