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요19:19-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19:19로마의 사형 법에 따르면 십자가에는 죄목을 붙여야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로마 군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죄목을 기록한 패를 붙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죄목이 붙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붙인 것입니다. 이 패는 빌라도가 직접 쓴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지칭했습니다.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요19:20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드나들던 많은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죄목이 기록되어 있는 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제국은 정치범이나 도망친 노예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공포심과 전시 효과를 주기 위하여 눈에 잘 뛰는 곳에서 십자가 처형을 했습니다.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예수님의 죄목을 기록한 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죄목을 다 알아볼 수 있도록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는 라틴어, 그리고 당시의 세계 공통어였던 헬라어로 기록했습니다. 빌라도는 전 세계를 향해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붙여진 팻말이었지만 그 분은 진정 유대인의 왕이셨고, 온 인류의 왕,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어떤 분은 그 당시 세계어인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번역된 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의 종교와 로마의 법과 헬라의 철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한 것이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요19:21그러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죄목을 유대인의 왕에서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한 순간이라도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노릇을 하려 드는 갈릴리의 촌부에 불과했습니다.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요19:22빌라도는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에게 내가 쓸 것을 썼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 내내 마지못해 유대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물론 빌라도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록한 글. “나는 정치하는 사람으로 유대인의 왕을 죽였다”는 자기 합리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예수님이야 말로 구원받은 우리의 왕이심을 만백성이 읽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참으로 왕 중 왕이십니다. 우리는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수치를 당하셨고,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가난하게 사셨으며, 우리를 치료하기 위하여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요19:23-24십자가형이 언도되자, 네 명이 한 조를 이룬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인계 받았습니다. 이 네 명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골고다까지 호송하고 거기서 십자가 형틀에 예수님을 못 박아 사형을 집행하는 책임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나누는 것입니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서 전적으로 수공업에 의존하여 옷을 만들어야 했던 당시에 처형되는 사람의 옷을 벗겨 나누어 가지는 것은 의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옷 한 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할 만큼 귀한 것이었기에 그만큼 더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고대사의 전쟁 기록을 보십시오. 양편이 서로 싸워서 이긴 쪽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사한 사람의 옷을 벗기는 것입니다. 피가 묻었든지 창으로 구멍이 났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옷이란 옷은 모조리 벗겨서 전리품으로 들고 갔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남성들의 정장은 보통 5가지 정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쓰는 터빈과 신발, 속옷 한 벌, 외투 한 벌, 허리띠가 그것입니다. 네 사람의 군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외투같이 좀 더 귀한 것은 계급이 제일 높은 사람이 차지했을 것입니다. 신발 같은 것은 아마 계급이 제일 낮은 사람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한 가지씩 나누고 보니 하나가 남았습니다. 속옷입니다. 물론 속옷이라고 해서 요즘의 속내의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당신의 속옷은 무릎까지 혹은 발꿈치까지 오는 통으로 짠 옷입니다. 통으로 짠 옷이기 때문에 네 조각으로 나누게 되면 쓸모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이것은 나누지 말고 제비를 뽑아 누군가 한 사람이 가지기로 하자” 그들은 그 제의를 좋게 여기고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누가 그 옷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제비뽑기를 한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아직 몇 분도 채 안된 시간입니다. 그러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찢어진 손발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십자가의 기둥에는 핏물이 흘러내리는 바로 그 발치에서, 로마 군인 넷이 예수님의 옷을 놓고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다 하면서 옷을 나누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남은 속옷까지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제비를 뽑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시22:18물론 다윗이 이렇게 예언한 바 있지만 이 얼마나 기가막힌 이야기 입니까?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속옷까지 발가벗겨지신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있는 현장에서 옷가지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네 명의 로마 군인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그렇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마음을 칠흑 같은 무지의 어두움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분이 누구신지, 또 그 분이 왜 죽으셔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자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저주스러운 무관심이 그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물욕이요, 다른 사람보다도 하나라도 더 얻는 것이요, 다른 사람보다도 한 발이라도 더 앞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더 잘사는 것, 이것 말고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로마 군인들에게서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던 때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추호도 긍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그때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이었습니까? 남보다 하나라도 더 소유하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십자가가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로마 군인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이렇게 소망이 없을만큼 악했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고결한 피를 흘리며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찬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