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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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28-3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18:28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가셔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 즉 공관복음에 따르면 ‘신성 모독죄’로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신성 모독죄는 유대 사회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는데, 당시 유대는 로마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였으므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대를 관할하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관정으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여기서 관정은 로마 총독이 예루살렘에 머물 때 거하는 공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은 지중해 지역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로마에 대한 반란을 막고, 세금을 차질없이 징수하기 위해 각 식민지마다 총독과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평소에 총독과 군대는 예루살렘에 주둔하지 않고 예루살렘 서북쪽에 해군 기지로 건설한 가이사랴에 주둔해 있었으나, 유월절과 같은 절기 기간 중에는 민란을 대비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예수님을 빌라도의 법정에 세워 사형시키려 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되셨습니다. 당시 산헤드린은 밤에 소집될 수 없었으며, 재판 관행상 밥에 이루어진 판결은 무효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새벽이라는 시간은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이 밤중에 이루어졌으므로 이 심문이 무효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7일 동안 부정하게 된다고 여겼으며, 더욱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결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거짓으로 정죄하여 죽이고자 하는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유월절 규례의 세부 조항을 지키고자 했던 유대인들의 위선을 보여 줍니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마23:24

율법에 의하면 하루살이와 낙타는 부정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보잘 것 없어서 거르기 힘든 하루살이는 세심하게 걸러내면서 (포도를 밟아 포도주 만들 때 하루살이가 달콤한 포도즙에 섞일까봐 거름망으로 세심하게 걸러내면서) 덩치가 엄청나게 큰 낙타는 삼키는 것 이것이 바로 유대 지도자들의 위선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율법의 세부적인 조항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은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지만 누가 보아도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는 앞장섰던 위선자였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러운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외부에 나타나는 모습만을 중요시하고 마음 속에는 탐욕과 미움, 거짓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23:25-26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요18:29

유대인들이 관정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큰 소리로 예수님을 고발하며 소란을 피우자, 빌라도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8:30

빌라도가 예수님을 고발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유대인들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시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판결하기도 전에 예수님을 행악자로 결론지었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31-32

예수님께서 정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훼방하는 자라면, 그들의 법으로는 군중들이 모여서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

"야훼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야훼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레24:16

이스라엘의 법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법이요, 역사적으로는 페르시아의 법이라고 합니다. 율법에도 없는 십자가형으로 하나님을 훼방했다는 죄목으로 처형했으니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이 이렇게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섭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성사시키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독생자를 주셨다의 의미 :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죽이시는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단호하신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3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가 담겨있는 사건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죽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십자가의 죽음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3

저주받은 죽음은 나무에 다는 것입니다. 나무에 메달아도 죽은 후 달았지 산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왜 십자가에 달아야만 했습니까? 저주의 죽음을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21:23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아담의 범죄로 우리 모두가 저주에 묶여 있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누군가가 대신 죽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12:32

들리면 : 매달리면,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빌라도의 재판 과정, 대제사장과 추종하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끌고 갈 때의 행동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새벽에 예수님을 불법으로 재판하고 기소하되 빌라도에게 넘긴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하필이면 왜 빌라도에게 끌고 갔나요? 잔인하게 죽이기 위함입니다.

로마는 유대 나라의 종교 문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묵인해 주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임을 묵인했기에 사람들이 귀를 막고 돌맹이로 쳐죽였습니다. 로마 정부의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묵인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들은 당장 끌어다가 돌로 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는 것으로는 분에 차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과 무리들이 분노로 이글거렸습니다. 증오가 지나쳐 광기에 가까웠습니다. 그 결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증오는 모든 정상적인 기능을 스톱시킵니다. 그 결과 상식,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갑니다.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 십자가 - 그래야만 분이 풀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제사장의 증오와 잔인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소송 건을 다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꿈을 꾸고 그 사람에게 손을 대지 마십시오. 관계하지 마세요. 그래서 처음에는 심문도 하지 않으려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 없노라 합니다. 그러나 폭도들은 듣지 않고 무조건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특사를 들고 나왔습니다. 지금 유월절이 아니냐? 누구를 특사로 내어줄까? 예수가 어떠냐? 바라바를 놓아라.

어떻게 하면 예수를 놓아줄까? 잔인한 방법을 쓰자.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게 하자. 그리하여 채찍으로 때려라. 기록에 의하면 채찍으로 때리면 10사람 중 1-2명은 죽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가시는 죄와 저주의 상징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가 났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하여 가시관을 씌우고 채찍으로 때려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모습으로 군중 들 앞에 세웠습니다.

얼마나 비참한가? 이 정도하고 놓아주자.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 동정을 좀 해라. 그러나 빌라도의 계산은 빗나갔습니다. 피를 보자 군중들은 더 무서운 증오가 쏟아져서 십자가에 못 박아라. 자기를 왕이라 하는 사람을 놓아주면 그도 반역자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가뜩이나 황제에게 점수를 얻지 못한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입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자기 위치 때문에 군중의 비위를 맞추어준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불의한 재판이 되었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자신의 소신대로 내어 주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을까? 군인들을 동원하여 무리를 흩었다면? 빌라도의 비겁한 정신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 예수를 증오하여 잔인하게 죽이려는 사람들의 뜻과, 빌라도처럼 자신의 보신에만 급급한 사람의 성격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2022년 8월 4일 오전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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