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요18:12-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요18:12이에,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홀로 자원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셨습니다. 변명 한 마디 없이 억울하다고 항의하는 몸짓 하나 없이 그 잔을 마시매.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신 것이 아니라 잡혀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혀주신 그날 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세 그룹의 사람들이 겟세마네 동산에 찾아왔습니다.
첫째는 로마 군대의 천부장과 군인들입니다.
둘째는 유대인들 즉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아랫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입니다
천부장은 천명의 군사들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그들에게 스스로 잡히시는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참 구세주에 대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 구세주들은 자기를 높이며 스스로 칭호를 붙이고, 스스로 숭배의 자리에 올라 기념비와 조각상을 세우고, 그 위에 구속자라는 이름을 써 넣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벽과 도시를 자기 사진으로 도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힘을 강화시키고 자기 위하고 즐거움과 안락을 추구하는 대신, 시종일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생각만 하셨습니다. 그 분은 자발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섬김을 받으셔야 하는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사 모든 이름 위에 높이 두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게 하시며, 모든 무릎으로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요18:13예수님을 체포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안나스는 주후 6년부터 15년까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지냈고, 그 후에는 다섯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을 지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셨을 때는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현직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원래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종신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 로마는 자신들의 마음대로 대제사장을 파직하고 임명하는 것을 일삼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가야바를 가리켜 ‘그 해의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실제로 그 배후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안나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체포한 무리들이 안나스에게 먼저 갔던 것입니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요18:14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당시 가야바는 현직 대제사장이자 산헤드린 의장이었습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선동해서 로마 정부에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불안해하였고, 이에 산헤드린을 열어 회의를 했습니다.
그때 의장이었던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고 말했습니다.
가야바가 이렇게 말한 진짜 이유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권세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야바는 심문을 통해 예수님의 유무죄를 가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요18:15-16여기서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체포되셨을 때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베드로와 요한은 돌아와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으므로 아무 문제없이 대제사장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에 요한이 문 지키는 여종에게 말하여 문 밖에 서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간 것입니다.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요18:17요한이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가려 하는데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목숨도 안전하지 못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의 행동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을 충실하게 따라다닌 수제자격인 사람입니다 그는 정이 많고 혈기 왕성하며 사고형보다 행동형의 사람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엄청나게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위기가 닥치자 순간적으로 칼을 빼들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입니다.
이런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신 순간부터 미심쩍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막14:50-52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따라오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히자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청년 그 제자가 누구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자신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가니라"
눅22:54베드로는 붙잡혀 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랐습니다. 즉 예수님께 가까이 가자니 용기가 없고 도망하자니 양심에 찔려서 붙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 따라 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 간 이유는 겁을 냈기 때문입니다. 칼을 빼들어 말고의 귀를 쳤을 만큼 용감했던 베드로가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확실히 믿자니 자신이 없고 교회에 안 다니자니 벌 받을 것 같은 생각에 교회에 오긴 하지만 항상 늦게 와서 일찍 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행사에 절대 끼어들지 않습니다. 설교만 듣고 그냥 돌아갑니다. 베드로와 같은 성향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베드로의 믿음이 인간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어도 성령 받지 못하고 인간적이고 육적인 믿음을 갖고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이성이나 경험에 근거한 믿음은 한두 번은 잘 할 수 있지만 고난이 오면 곧 피해 버립니다.
그런 현상은 봉사 활동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누가 뭐라 해도 끝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시켜서 합니다. 그러나 칭찬 받기 좋아하고 분위기를 타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봉사 활동을 합니다.
둘째는 기도해야 할 때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겟세마네동산을 찾으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겟세마네 동산에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을 보면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깨우시면 그들은 또 잠을 잤습니다. 세 번이나 기도하라고 깨우셨지만 제자들은 또 잤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어떤 위기가 찾아오고 태풍이 몰아쳐도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문젯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없어질 수도 있고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죽은 사람이 다 살아나고 암에 걸린 사람이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모두가 만사형통인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어떤 고난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기도한다면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적 능력과 마음의 강건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는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군인들과 유대인의 하속들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그는 칼을 빼들고 휘두르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동적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고 나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동적인 생각과 행동은 멋져 보이고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은 결과로 충동적 행동을 자행해 말고의 오른편 귀를 베었지만 예수님께서 말고의 귀를 도로 붙여주시며 베드로에게 칼을 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상황에 대비해 기도로 준비하신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장한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찾아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에 봄이 있고 여름도 있으며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습니다. 인생은 항상 평온하고 온화한 게 아니라 더러 시련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믿음으로 준비가 돼 있으면 어떤 시련이 와도 넉넉히 이기고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