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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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18:7-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요18:7-8

예수님께서는 땅에 엎드러져 있는 무리들에게 다시 한번 ‘누구를 찾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한 제자를 가리킵니다. 이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예수님만을 체포하도록 하고, 나머지 열한 제자는 자유롭게 보내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때로는 제자들을 책망하기도 하시고 꾸짖기도 하셨지만, 이는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함이요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9

예수님은 죽음을 무릅쓰고 제자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7-39

예수님께서는 양 떼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시고 제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으며, 자신의 예언 또한 이루셨습니다.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요6:37-39

1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육신의 생명을 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시지만 제자들이 잡히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2제자들의 영적인 생명을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방금 전에 드리신 대제사장의 기도를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 삼으신 다음에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18:10-11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검을 휘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제지하시며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은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의 잔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베드로에게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 내게 왜 방해하느냐?’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에 저항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주저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6-11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순종이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들의 목사로 알려진 미국의 침례교 목사님 워렌 워어스비 목사님은 ‘예수님의 순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동산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순종함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셨습니다. 첫째 아담은 인류에게 죄와 사망을 가져다주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와 생명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에덴은 ‘불순종과 죄의 동산’이었지만, 겟세마네는 ‘순종과 축복의 동산’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잔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잔을 마실 생각은 아니하고 잔을 바꿔달라고 합니다. 주신 그 잔이 싫다는 것입니다. 다른 잔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그래서 밤낮 “싫어요” “못해요” “안 해요” 하는 불평, 불만이 가득한 원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무 가치없는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결과 요나처럼 도망치는 인생이 됩니다.

요나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가서 말씀을 증거하면,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망할 도성이 하나님의 도성으로 변화받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 사명을 받은 자가 바로 요나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잔을 마시기만 하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밤낮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요나가 탔던 배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요나 때문입니다. 원래는 구원을 가져오고 축복을 가져와야 할 요나가 오히려 재앙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요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나 하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이 괴롭고 죽어갑니다. 내게 주신 잔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부모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자식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이가 죽은 이유? 부모의 범죄 때문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부모의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것이 무엇입니까? 축복과 은혜입니다. 부모가 불순종하고 죄를 지으면 자녀에게 아픔이 주어집니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엉터리 인생을 살고 있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심판의 통로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넘어뜨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마시지 않고 불평합니다. “하나님, 부조리합니다. 모순입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 이런 잔을 주시는 겁니까?”

부조리를 말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부조리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조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겠다고 하면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인생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잔을 바꿔달라고 떼쓸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잔을 마셔야 합니다.

현대인의 불행이 무엇입니까? 순종이 뭔지 모릅니다. 순종을 배우지 못합니다. 순종하면 자신이 죽는 줄 압니다. 순종은 주관이 없고, 똑똑치 못한 사람만 하는 줄로 착각 합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수도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수도사가 되겠다는 두 사람이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프란체스코가 마침 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

뿌리를 하늘로, 줄기를 땅으로 심으라는 이상한 명령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프란체스코의 말대로 순종했으나, 다른 한 사람은 말도 안된다며 바로 심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입문하게 되었고, 제대로 심은 사람은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지금 프란체스코가 뽑고자 하는 사람은 농사꾼이 아닙니다. 농사꾼을 뽑으려면 제대로 심는 사람을 뽑아야지요. 그러나 지금은 수도사를 뽑는 것입니다. 프란체스코는 지금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물어보는 것입니까? 순종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R.A. 토레이 목사님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가 그 권능을 받는 데에는 오직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권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면 되는 것이고, 성도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순종하면 됩니다. 이런 단순함 속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이유? 나를 순종케 하는 분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나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판단해 주십시오. 나는 갈 길을 모릅니다. 주님께서 갈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나는 판단할 줄 모릅니다. 주님이 판단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관건은 순종입니다.

순종도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부터 순종하는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앞일을 알고 떠났습니까? 모르고 떠났습니까?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창12:4

아브라함은 시작부터 순종이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바칠 때에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머리만 커져 있습니다. 들은 바 말씀은 굉장히 많습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순종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순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22-23

다른 것은 없어도 좋습니다. 순종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천천의 수양의 기름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우리가 쓴잔을 마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2022년 7월 28일 오전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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