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17:11-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하루 전날 밤에 드렸던 기도입니다.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의 3분의 2가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은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보전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7:11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이후에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지켜주시되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부자로 살 수 있게 지켜달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 수 있게 지켜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소유를 뜻합니다. 책에 이름이 적혔으면 아무개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달라는 것은 아버지의 소유로 만들어주시고, 아버지께서 책임져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17:12성도의 안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이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삼하22:1-4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담과 성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담과 성을 쌓습니다. 담과 성을 높이 쌓다 보면 저절로 타인과 단절 됩니다.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교제를 모두 끊고 혼자 골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외롭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외로운 사람은 이불을 걷고 골방에서 박차고 나와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성실하게 처신한다고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기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보호의 기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보호의 기도란 주님께서 마귀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될 수 있으면 여러 가지 시험을 피하게 해달라는 수동적인 기도로 오해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17:15예수님의 뜻은 제자들을 온실에서 키우듯 보호했다가, 천국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악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도피가 아닌 승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혈한(血汗) 혈루(血淚)란 말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피땀과 피눈물을 흘렸다는 뜻입니다. 승리자의 외침에는 싸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싸움 없이 승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출애굽의 과정도 보십시오. 애굽에서의 탈출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홍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계속 싸워야할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아말렉과도, 가나안 7 족속과도 싸워 이겨야만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후의 축복은 내가 싸워 이겨야 합니다.
2하나 됨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7:11예수님은 죄인인 인간의 본질이 분열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두셋만 모이면 서로 비판하고 싸우며 편 가르기를 합니다. 사랑하고 협동하는 게 아니라 갈등하고 반목하며 헤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처음에 서로 사랑할 것 같고 함께 나눌 것 같으며 모두 평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부패한 면을 드러내고 맙니다.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헤어지는 이유는 그 속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겉으로 도덕과 교양과 체면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 세월이 지나면 그 죄성의 뿌리를 드러내고 맙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유 권력 의심 등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믿다가도 의심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동업인 것 같습니다.
사탄은 분열의 영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싸움을 만들뿐 아니라 교회마저 다투게 합니다. 반면 성령님은 연합과 일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우리에게 회복과 치유가 있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틀린 것을 옳게 하시고 그른 것을 바르게 하시며 나뉜 것을 하나로 만드십니다.
예수님께서 화해자로 세상에 오셔서 친히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도 세상을 화목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천사도 감당할 수 없는 직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곳에 있든지 화해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트러블 메이커 가 아닌 피이스 메이커가 돼야 합니다.
화해자의 특징은 한마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화해자로서 치러야 할 대가는 반드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병법의 기본은 적을 흩어버린 다음에 공격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교회를 약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교회를 분열케 만든 다음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틈타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이스라엘 표상 중에서 제일 불쌍한 모습을 묘사할 때 길 잃은 어린 양, 무리를 떠난 양을 들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리를 떠난 양이 살 길이 있습니까? 살 길이 없습니다. 늑대의 밥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출한 여고생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입니까? 집을 탈출한 승리감이 느껴집니까? ‘앞으로 엄청난 유혹이 있겠구나’
교회 안에도 가출한 여고생 같은 사람들이 혹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져도 교회 울타리 안에서 넘어지면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험이 들어도 예배를 떠나지 않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는 방법은 교회 공동체를 떠나게 하고 예배를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깨지든 상처를 입든 간에 하나님의 공동체, 교회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이것을 ‘으깬 감자’라고 표현합니다. 감자를 완전히 으깨야지만 하나가 됩니다. 결국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 안 보려고 하고 내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까 하나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희생입니다. 자신이 손해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아무리 유익이 없다 해도 다른 사람과 하나 될 수 있다고 하면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복된 길입니다.
일본의 여류 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분인데, 이 분이 결혼을 하고 난 다음 부업으로 구멍가게를 하나 열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장사가 잘되었는가 봅니다. 어느 날 예수 잘 믿는 남편이 아야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아무래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소. 우리 가게가 너무 장사가 잘되어 우리 이웃의 가계들이 문을 다 닫을 지경이 되었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해서는 안될 일인 것 같소’
그러면서 부부가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계만 잘 되어서 가장 소중한 이웃과의 사랑의 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게 도와주소서. 사랑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런 다음 날 부터는 가게의 상품의 3분의 1 정도만 갖추어 놓았다고 합니다. 구색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없는 상품을 찾는 사람이 오면 전부 다 이웃의 가게로 보냅니다. 그랬더니 모든 가계가 다 번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니까 시간이 좀 남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미우라 아야꼬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이 ‘빙점’입니다. 이 소설이 현상 응모에 당선되어 가게를 꾸리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 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생하고 우리가 손해 보더라도 하나 됨을 지키면, 그 다음에 우리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부분에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