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17:4-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하라고 주신 일에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100%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영광은 반드시 순종을 통해서만 됩니다.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효자가 부모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존경한다는 것은 그 분의 뜻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것이 곧 그를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보면 주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고 그 결과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빌2:8을"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즉,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신 일입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어진 일이기에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일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모세는 모세에게 주어진 출애굽의 과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믿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내 하는 일들이 비록 작은 일 같아도 그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입니다. 요셉은 종으로 보디발의 집에 충성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임금 앞에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도 직장 생활도, 사업도, 어떤 일을 하든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알아주고 인정해 주던,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17:5우리는 종종 내가 출세하고 내가 잘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출세가 나의 부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면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요셉의 출세가 이스라엘 민족 번영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느헤미야의 출세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쓰여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건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지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축복을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17:6요한복음은 영원한 주제는 영광입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8식물이 태양 빛이 있어야만 광합성을 하고 광합성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이라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소생함을 입게 됩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눈을 들어서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면 그 다음에 그 영광이 내 속에서 역사합니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주님의 영광이 성도에게 임하여 성도 또한 영화롭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줍니다. 때로는 귀신이 쫓겨남을 통하여, 때로는 바람과 파도가 순종함을 통하여, 때로는 죽은 자를 살리심을 인하여, 때로는 질병을 치료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눔으로 말미암아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했습니다. 또한 스데반이 공회에서 말씀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의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일컬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빛 되신 예수님의 그 빛을 받아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이라는 말 대신에 영광을 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해야 될 일은 세 가지입니다.
1제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2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전해야 합니다.
3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을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여주시는 방법은 항상 사람이었습니다.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거짓 종교는 사람 이외의 다른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당을 지으려고 할 때 자금이 부족하니까 나중에는 그 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를 위해서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그 죽은 자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 지옥에 가 있는 조상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연옥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식의 치졸한 거짓말을 통해 돈을 끌어 모으고, 그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웅장한 규모를 가리켜 ‘주의 영광을 보라’고 말합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아, 인간의 방법으로 저 건물이 지어졌구나’
하나님의 영광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건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유적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유적을 찾는다면 로마의 어두침침한 감옥 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 이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누구를 남겼습니까? 그들이 구원한 영혼들을 남겼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람을 키우는데 모든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들을 통해 복음이 능력있게 전파되었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 동안 하신 일은 12명의 제자를 양성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자들은 양성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영광을 원한다면 사람에게 투자할 줄 알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교회 이외의 단체도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이 된 배경에는 인재가 있습니다. 박사급 인력만 해도 사단 인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민족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왜 무서운 민족입니까? 한번은 그들이 기근을 당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굶어 죽어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어머니에게 약간의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곁에 랍비가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식량을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품에 안고 있는 아들에게 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은 랍비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교육입니다. 그들이 랍비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신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인재를 귀하게 여깁니다. 미국에서 즉석에서 시민권을 주는 몇 가지 특례가 있습니다.
1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한 사람들은 즉석에서 시민권을 줍니다.
2과학자에게 특혜를 줍니다.
이들에게는 국가에서 결정만 내리면 즉석에서 시민권을 발급해 줍니다. 3년이니 5년이니 하는 유예 기간이 없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원자탄 개발의 핵심 인재들이 전부 다 독일 과학자였는데, 이들은 모두 미국으로 건너오거나 망명했습니다. 이처럼 인재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미국은 부흥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면 인재를 우습게 여겼던 나라가 있습니다. 캄보디아입니다.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고 난 다음,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습니다. 그 당시 일화를 보면 안경 낀 사람은 인텔리라고 해서 무조건 다 죽였다고 합니다. 눈 나쁜 사람들은 캄보디아에서 안 태어나길 참 잘했습니다. 안경을 끼면 안됩니다. 그래서 이 캄보디아를 죽음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재를 다 죽이고 나니 결국 지금 와서 아무리 부흥을 하려고해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바로 인재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요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하루 전날 밤에 드렸던 기도입니다.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3분의 2가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오직 인재를 두고 하신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신 후 이제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준에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적 깨달음이 미숙했고 실수투성이에 허점투성이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실 때까지도 시쳇말로 철이 덜 들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철 안난 사람들과 같이 사는 일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철 안든 남편과 아내와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철 안든 자녀들과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버릴 수도 그만 둘 수도 없어 난처하게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미숙하고 철 안든 제자들을 옆에 끼고 사셨습니다.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알아듣고 깨닫도록 끝임 없이 가르치고 훈련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