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1이 말씀을 하시고, 요한복음 13장-16장 까지 이어지는 긴 말씀을 하시고 (요한복음이 21장인데 그 중 무려 4장이나 되는 긴 말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식을 세족식으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로 이 세상을 마무리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좋은 옷을 사겠습니까? 좋은 음식을 먹겠습니까? 아니면 보고 싶은 사람을 부르겠습니까?
결정적인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죽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을 봅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사람이란 어짜피 다 죽을 것인데 그렇게 야단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내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시간이라면 그 마지막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도록 생각을 돌려야 합니다.
세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 가장 극치에 다달았을 때에 막을 내려라’고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 막이 내려지지 않으면 지겨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3세, 다소 빠르기는 하지만 인생의 클라이막스에서 막이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신 다음에 비로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순간마다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를 선택할 때도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고 난 다음에도 기도로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마지막도 기도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7장의 기도 내용은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다음은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중보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흔히 중보 기도라 하면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계면쩍은 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금기로 간주합니다.
보편적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미성숙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보 기도는 이웃을 위한 성도의 덕목이지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 기복 신앙이라고 매도해 버리기도 합니다.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선교사들을 위해 나라와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욱 성숙되고 선한 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신 것입니다. 흔히 다른 사람을 위해 먼저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일 텐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우선으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어떤 중보 기도를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1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이웃을 도와주고 싶은데 힘이 없다면 도와줄 수 없습니다. 힘이 있어야 남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해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은혜 충만 해야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힘, 건강, 은혜가 있어야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겁니다. 가진 것이 없다면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남을 도와 줄 수 있도록 힘이 있고 건강 하며 은혜도 충만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선 모든 면에서 남을 도울 수 있도록 모든 것이 항상 풍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에 세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개인의 안락과 이익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화를 구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살아도 하나님의 영광, 죽어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먹어도 하나님의 영광, 마셔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나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우리 인생도 멋진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하는 삶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초라한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영광스런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영광스런 인생을 살도록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광스런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로 인하여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도 많지만,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져서는 안됩니다. 혹시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너 때문에 예수 믿지 못하겠다’ 손가락질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의 첫 번째 관심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세상에 오신 목적을 잘 깨닫고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내용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위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2-3하나님께서 만민을 다르시는 권위를 예수님께 주신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는데 그 권세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고후10:8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설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권세를 받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제 말을 들으려 교회에 오겠습니까. 세상에 훌륭한 강의가 얼마든지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 받게 하시려고 저에게 설교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는 일입니다. 3절 말씀에서 영생에 대해 잘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영생이 무엇입니까? 영생이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영생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안 죽는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 즉 안 죽는 생명은 지옥에도 있습니다. 지옥가는 사람도 영생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영생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살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비참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은 오래 살고, 영원히 산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주요한 것은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질입니다. 어떤 질을 가진 생명인가, 얼마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인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최상의 질을 가진 생명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누리고 계신 생명이야 말로 최상의 질을 가진 생명입니다. 거기에 참된 영원히 있습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거기에 만족이 있습니다. 거기에 영원한 사랑이 있습니다.
살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영생입니다. 예수님은 이 영생을 세상에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있는 힘과 정성을 다 쏟아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주기 위해서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절에 그 방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영생을 얻는 방법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이 만들어 낸 거짓 신입니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요 참 신입니다. 그러므로 유일하시고 참되신 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막연히 안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그 분을 아는 길은 우리 스스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아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머리로 약간 인지하는 정도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의 관계를 영원히 지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