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해서 미리 말씀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미리 알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면 마음이 불안해 집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죽을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몸이 아파도 마음은 평안하지 않습니까? 무슨 병인지 모를 때는 불안하지만 알고 나면 평안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성경 말씀 안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는 것도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세상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도 누구이 강조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악해질수록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를 핍박할 것이라는 것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조용히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앞에 다가올 모든 문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담대하게, 평안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지구 곳곳에 지진이 일어나며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들리는 상황이 생겨도 인간적으로는 두려워하겠지만, 영적으로는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대범하게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평안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악한 세상이 무슨 짓을 할지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승리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사단이 보기에 주님은 패배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흘 만에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시자마자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구절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표현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어법을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 중 너무나도 확실하고 분명한 일을 이야기 할 때 과거사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말에도 이와 비슷한 용법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엄포를 놓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 이제 죽었다’ 시제는 과거로 표현했지만 미래에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어법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나의 승리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다 라는 승리의 선언문입니다.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고 우겨 쌈을 당해고 버림을 당해도 이깁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구절을 ‘영적 정복자의 승리의 선언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믿는 우리가 마지막에 서게 될 자리가 승리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가 얻게 될 열매가 승리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반드시 승리할 것을, 성도가 반드시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깁니까? 예수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우리가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갈 때에는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 인물들 중에 평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사야는 평생을 핍박당했으며 마지막에는 톱으로 켜서 순교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평생 조롱을 당했으며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나중에는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유리방황했으며, 모세는 40년 동안 유랑 인생을 살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후11:23-33절에서 자신이 겪은 고난은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다 승리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다윗, 모세, 바울, 베드로 모든 다 승리자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점검해 볼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피할 수 없는 것이 환난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마지막에 승리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질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칼이 승리의 첩경이라고 합니다.
후진국의 특징은 쿠테타로 군인이 집권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26:52어떤 사람은 교회가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주후 313년 이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권력을 이용하여 기독교의 복음을 확산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복음화 한 것이 아니라 세속화하여 교회가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고 합니다. 12세기는 교황권의 전성기였습니다. 아마도 교회 역사상 교회가 그렇게 돈이 많았던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12세기 교회가 가장 타락한 교회였다는 사실은 아십니까?
교회는 돈이 힘이 아닙니다. 권력이 힘이 아닙니다. 칼이 힘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환난 가운데 지니고 있어야 할 무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환난 가운데서 승리하도록 우리들에게 3가지 무기를 주셨습니다.
1용서는 최후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요16장의 상황은 예수님이 십자기를 지시기 직전입니다. 번민과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는 자칫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폭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태로 인하여 주변 사람을 괴롭히기 보다는 오히려 제자들을 아끼고 배려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배신하고 도망칠 것을 미리 다 아시면서, 그 외로움과 배신감 속에서도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미리 용서하셨습니다. 이 용서의 태도가 최후 승리를 가져다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용서는 원래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 죄인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의 본능은 미움이요, 저주요, 갈등이요, 분노입니다. 우리가 언제 용서할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나 우리의 심령에 성령님이 역사할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용서는 마귀의 능력을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질투와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가 받는 상처가 얼마나 컷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팔았던 형들이 양식을 구라여 와서 자기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사람이라면 마땅히 ‘내 인생을 망친 놈들, 내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놈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환경을 탓하고 저주하며 미움을 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능력입니다.
똑같은 일이 다윗에게 벌어졌습니다. 다윗은 원수 같은 사울을 두 번씩이나 살려 주었습니다. 스데반도 돌을 들어 자신을 치려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잘 보십시오. 용서하면 마귀의 모든 계획이 다 박살납니다. 만약에 요셉과 형들의 경우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피의 복수가 전개됩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며 싸움이 일어났겠지요. 그리하면 형들의 자녀들이 자라서 요셉에게 다시 원한을 품게 되면 피의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용서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사탄의 세력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용서에는 힘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용서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고, 백성에게서도 민심을 얻게 됩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으면서도 그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을 용서했기에 사울이 변화되었습니다. 결국 용서가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최후의 승리를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리하면 용서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는 사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용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 병기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서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11:25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기도할 거리를 생각나게 만드십니다. 그때 어떤 미워하는 사람이 생각나면 그럴 때 마다 즉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그런 생각이 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우리는 다 용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정죄하면 우리는 전부다 서로가 쏜 화살에 맞아서 신음하는 인생이 됩니다. 성도는 용서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고, 마귀의 모든 궤계를 물리치는 사명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용서의 무기로 최후 승리를 얻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