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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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요16:25-3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요16:25

여태껏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실 때 여러 비유를 들어 알기 쉽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국을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 봤자 이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천국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에는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님이 그들에게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요16:26-27

여기서 그 날 이라는 말은 부활하신 후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모든 것들에 대해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로 응답받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직접 기도하게 하시고 응답받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가히 기도의 혁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뒤섞여 아주 복잡하게 살아갑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화조차 통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도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할 때도 목마른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속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들도 저마다 영적 이해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기도의 내용도 제각각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율법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한 차원 높은 믿음의 세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구원은 받았지만 홍해를 건너기 전에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은 받았지만 바로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아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응답되는 까닭은 제자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자들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자 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공로를 의지해서가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나아갑니다. 심령이 가난한 모습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초가 되며,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기도와 간구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지고 낮아진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기적, 치료, 용서, 평안, 축복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16:28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디서 오셔서 무엇을 하시다가 어디로 가시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와 연결 됩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는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는 데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인가, 죄 사함 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을 누릴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으면 미래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천국까지 볼 수 있습니다. 미래를 보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은 앞두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4:6-8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요16:29-30

제자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기 전 까지는 여전히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실 때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대해서 온전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단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믿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16:31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 원문에는 ‘이제는’이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정말 지금 믿어지느냐?’라고 물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시점을 ‘그때’,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은 후라고 여러 차례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고백은 바른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반문하신 의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요16:3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고백에 대해 반문하신 다음, 마음 아픈 말씀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나 직장에서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이별을 준비하는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떠나가신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매우 불안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힘든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과 죽음으로 이별할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정이 든 직장에서 떠날 때 조국을 등지고 타국으로 떠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어떤 경우라도 절대 혼자가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우리가 가족과 이별하고, 직장에서 나오며, 조국을 떠나더라도 혼자가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결국 홀로서기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의지하고 조직을 의지하며 돈을 의지하고 명예를 의지해 생존하려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영원한 동행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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