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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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요16:1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실족할 일이 생기고 시험에 들일이 생깁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다가올까요? 누구는 예수 안 믿어도 잘만 사는데.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봉사했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했고, 누구보다도 바르게 살았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닥치는가? 이런 회의와 더불어 시험에 들고, 심지어는 예수 그만 믿어야지 하고 실족할 경우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선 본문의 배경을 보면 요한복음 13-16장까지는 예수님이 최후의 성찬을 하시며 남기신 긴 설교의 말씀입니다. 소위 다락방 강화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위로와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당시의 분위기를 잠깐 생각하면, 무엇보다는 예수님은 당장 십자가를 눈 앞에 두고 계십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불과 9시간 후에는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제 이 성찬을 끝내시면 비록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시고, 그곳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자 가롯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셔서 잡히십니다. 그리고 곧 이어 심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누가 생각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모순입니다. 의로운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으며, 불쌍한 사람을 도우시는 등 어디를 보아도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지시므로 암흑과 마귀의 승리를 보는 것 같아, 만약 십자가 후에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의도, 진리도 소망도 없는 깜깜한 세상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지금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순과 부조리, 비합리와 어둠, 그리고 혼돈이 목전에 닿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게 되고 미혹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핍박이 가해지며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이후에도 제자들은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목 베임을 당하여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환난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이상과 같은 모든 일들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신앙에 회의가 다가오고, 시험들 일이 생기며, 실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을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16:2-3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죄에는 알고 짓는 죄가 있는가 하면 모르고 짓는 죄가 있는데, 알고 짓는 죄는 양심이 찔리고 손이 떨리지만 죄인줄 모르고 짓는 죄는 용감합니다.

회심하기 전 사울이 그랬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최고의 학벌)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행22:3-4

사울이 이렇게 할 때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행한 일이 죄인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26:9-12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3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출교하고 핍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16: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2

여러분, 신앙생활 중에 실족할 위기가 다가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요16:4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5:40-42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이상하지 않나요?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에 가능.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11-12

제자들이 이렇게 실족할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아시면서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가시나요?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오히려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7

성령 : 다른 보혜사

다른 : 종과 강대상처럼 전혀 다른 것이 있고, 이 종과 저 종처럼 재료는 같으나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전혀 똑같은 분이십니다. 능력, 성품도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알로스 파라 클레토스 (곁에서 도우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지금 믿은 우리에게는 성령님께서 다른 보혜사로 오셔서 시간과 공간을 초원하여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고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도와주시고, 실족치 않게 도와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 바르게 깨닫게 됩니다.

2022년 6월 30일 오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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