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요15:18-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15:18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고자 이 땅에 와 계실 때 세상은 예수님을 지독하게 미워했습니다. 왜 세상이 예수님을 그토록 미워했을까요?
1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15:182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15:19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제 새끼는 사랑하고 남의 새끼는 미워합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향입니다. 전에 우리는 세상의 것으로 세상에 속해 있었습니다. 사단의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미워합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교회와 세상,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와 같이 흑백 논리를 잘 전개했는데, 본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 소속된 자들이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을 흑백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은 실질적으로 어떤 타협이나 동화가 불가능합니다. 양자택일만 있을 뿐 어떤 중간 지점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자기와 같이 노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기하고 다르게, 별나게 놀면 미워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한때 ‘왕따’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왕따가 무엇입니까? 자기편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고 외톨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의 이지매가 바로 그런 것인데, 이 세상은 원래부터 그런 기질이 있습니다.
우산을 처음 발명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산을 처음 발명한 존스 헨웨이는 어떻게 우산을 사람들에게 보급할까를 놓고 고민하다가 비가 오는 날 동네에서 자기가 만든 우산을 쓰고 일종의 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비 오는 날 드디어 그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에게 돌멩이를 던지는가 하면 쓰레기를 집어 던지며 놀려댔습니다. 자기와 조금만 달라도 미워하는 가 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보면, 성도들 가운데는 명절 때만 되면 제사 문제 때문에 홍역을 치르는 분이 꾀 많았습니다. 우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살아 계실 때 불효하던 사람이, 제사는 더 극성맞게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모순된 짓들을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은 혼이 와서 차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사의 배후에 있는 조상신에 대한 종교적인 신앙을 부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는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안 지낸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들과 한 통속이 되지 아니하는 것에 대한 증오감입니다.
셋째는 무지하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요15:21사도 바울이 과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얼마나 박해했습니까?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고요. 스데반의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을 잡아 오려고 다메섹까지 갔던 사람입니다. 사울이 과거에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박해하는데 앞장 선 것입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3예수님을 박해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을 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바로 예수님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릅니다. 하물며 그들이 구원받은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 턱이 없습니다. 이렇게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처럼 핍박을 당하는 시대에 살았다면 실감이 나겠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멱살 잡고 뺨을 때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신분 때문에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교회를 세워도 국가의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말씀이 다소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독하게 미움을 받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워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우리를 미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우리가 미움을 받고 있지도 않은데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미움은 영적이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고, 본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옛사람과 중생 받은 새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여기서의 미움이란 바로 존재론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예를 하나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흑백간의 갈등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영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혈통과 역사에 뿌리를 둔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백인과 흑인이 함께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교제합니다. 회사에서도 같이 일합니다. 또 나라를 위해 필요하면 함께 전투에 나가서 싸웁니다. 흑인들의 경우 특히 스포츠 영역에서 백인들이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국가를 위해 공헌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서로가 함께 협력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돌아가면 흑인은 흑인끼리, 백인은 백인끼리입니다. 서로가 잘 섞이지 않습니다. 억지로 섞지 않는 이상은 흑은 흑이고, 백은 백입니다. 흑인은 백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백인 역시 흑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서소한 일이건, 큰일이건 간에 조금이라도 충동을 느끼면 이와 같은 징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과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교회 사이에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서로가 조화를 이루려고 해도 조화를 이루기 힘든 이질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와 사단의 소유된 세상 사이에 흐르는 이와같은 정서는 영적인 성격의 것이라서 다소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고와 우리의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치지만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안 믿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함께 우정을 나눌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메울 수 없는 골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통하지 않는 어떤 이질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표시가 나지 않아도,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우리는 이처럼 그 바탕이 통할 수 없는 별개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예수 믿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미움을 받거나, 소외를 당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 분이 하나님께 속한 자요, 예수의 제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여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학적인 면에서 자기 영역을 탁월하게 드러내고 있는 교수입니다. 남편과 아내 둘 다 교수이니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입니까? 이 부인은 10년 전에 예수를 믿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던 자기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놀라운, 황홀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뒤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바쁜 교수 생활 중에도 성경 공부를 하고 구역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과 그가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불경을 읽고, 참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물을 떠 놓고 절을 합니다.
이런 부부가 한 지붕 밑에서 산다고 상상을 해 보십시오. 겉으로는 부부입니다.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존경합니다. 서로 위해 줍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역, 곧 영적인 세계에서는 도무지 부부가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긴장감이 심하겠습니까?
그래서 한번은 그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면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영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이야 말로 그 집사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직장에서 거짓말하라는 데도 안하고, 서류를 위조하라는 데도 동의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서 뒷거래를 하라는 데도 말을 듣지 않아서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우리가 세상에서 살려고 할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한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빛의 자녀인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바로 살려면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본문은 이 평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지금까지 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해서 미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미리 알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죽을 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몸이 아파도 마음은 평안합니다. 무슨 병인지 모를 때는 불안하지만 알고 나면 평안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는 것도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워올수록 세상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도 누누이 강조하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악해질수록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를 미워하고 핍박할 것도 미리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주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사단이 보기에 주님은 패배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자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을 정복하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시간부터 마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기었노라 나는 헬라어로 네니케카 인데 이것은 한 번 이기고 끝나는 승리가 아니라 영속적으로 이기는 완료형의 승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악과 대결하다가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결국에는 우리가 이깁니다. 결국에는 우리가 승리합니다.
2022년 6월 25일 오전 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