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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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15:13-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3-14

예수님께서 국가나 부모에 대한 사랑을 최고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는 커녕 친구를 상대로 사기나 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들게 합니다.

사기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친한 친구를 상대로 사기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우리는 부모나 자식 사랑하기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친구 사랑하기는 어색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5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로서 오늘 밤이면 모두 도망을 칠 사람들, 그 형편없는 제자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내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자신을 제자들만큼 낮추었다는 뜻도 되고, 한편으로는 제자들을 예수님만큼 높여서 대했다는 뜻도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일단 제자로 통합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요 랍비요, 그를 따르는 자는 제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그들을 친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예수님과 동등하게 높여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은 내가 너희를 종이라 말하지 않는다. 친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마지못해 굴종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율법적 관계에서 보상받기 위하여 혹은 저주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그런 순종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로서의 그 같은 충성, 그 같은 사랑, 그 같은 마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노라. 나는 너희를 친구로 대하고 죽는다. 너희는 이 같은 사랑을 서로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친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사랑할 때 내려다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수준에 놓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어느 부인이 남편으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그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해 참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이 말하기를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므로, 원수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여러분, 이 사랑이 바로 된 것입니까?

사랑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돈 몇 푼 주면서 사랑을 베풀었다고 대단해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수준에 놓고 ‘나는 당신과 같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입은 것 뿐입니다’ 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인으로만 사랑하셨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같은 수준으로 내려오시어 너희는 내 친구다라는 의식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가급적이면 상대방을 나보다 더 높이고 존경을 겸한 사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일대 일의 위치에서 논의하고 서로 비밀없이 묻는 입장에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수준에서 사랑해야 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 중에 가장 어려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아십니까? 나보다 못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는 도덕적 사치로 자기 희열을 느낄 수 있어서 보다 쉽게 사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원수 사랑도 친구 사랑보다는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친구 사랑은 라이벌로서 경쟁 상대이기에 팽팽히 맞서며 한 치의 양보도 어려워서 사랑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한 것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문둥병자를 위해서 살아야 큰 사랑일 것 같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 이상으로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등한 위치에 있고, 경쟁하는 상대이므로 사랑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우연히 돌발적으로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게 된 것을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가 잘 되기 위해서 내가 희생하고, 친구의 명예를 위해서 내가 굴욕을 당하고, 친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내가 죄인이 되는 것이 친구를 위한 큰 사랑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15:16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또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포도나무는 나무와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생명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늘 주님 안에 있어야만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름다운 생명의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는 열매를 맺기는커녕 생명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예수를 믿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그 가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저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고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지로 선택해 주셔야 가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022년 6월 22일 오전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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