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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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 본문에서 같이라는 말에 특별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이 헬라어로는 카토스이기 때문에, 같이를 카토스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카토스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아는 은혜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형제 사랑의 표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준은 너무 높아서 현실성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중에 누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라는 말씀 앞에서 항상 절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한 가지 신비한 원리가 작용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내가 절망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내가 벽에 부딪힐 때 하나님이 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참 중요한 원리가 아닙니까? 사랑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이 카토스 앞에서 우리가 절망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너희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전제를 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 말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을 배우는 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아야 너희가 그만큼 형제를 사랑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은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현재적이고 계속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무궁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쏟았던 그 사랑을 아직도 거두지 않고 우리를 향해 베풀고 계십니다. 이것을 알고 체험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카토스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주는 힘을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고 체험하는 그 은혜 때문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소위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면 항상 감정을 앞세우는 버릇이 있습니다. 에로스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에로스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사랑은 대부분 감정에 충실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사람이 욕하는 그 남자를 몹시 그리워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니 이성으로는 모두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에로스의 사랑입니다. 이런 감정을 빼 놓으면 에로스의 사랑을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감정이 동해서,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이 차가와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에 싫든 좋든, 감정이 있든 감정이 없는 행동으로 옮기는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고전13:4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13:4

아가페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도 오래 참아 줍니다. 오래 참아 주는데 무슨 특별한 감정이 필요합니까?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질투 안하면 그만이지 여기에 무슨 감정이 필요합니까?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PR에 정신이 없다해도 내가 자랑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여기에 무슨 감정이 필요합니까?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5-7

여기에도 감정이 거론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랑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생명을 걸다시피 결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만이 이 사랑을 흉내라도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시는 카토스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를 아는 그 은혜를 받을 때에만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랑의 바다에 몸을 던지기 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엄청난 은혜의 에너지에 떠밀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카토스의 은혜가 부족한 것을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촉발시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에 불을 지를 때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이 우리 속에 있는 증오와 원망, 앙갚음의 감정을 싹 태워버려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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