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5: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은 불과 몇 시간 후면 십자가에서 그 끔찍한 사형을 당해야 하십니다. 십자가의 공포가 예수님을 온통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마음 속에는 이와 같은 공포가 빼앗아 가지 못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바로 그 기쁨을 제자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사랑 안에, 예수님의 계명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상급과 축복을 받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맛 볼 수 없는, 세상에는 없는 참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4:7세상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돈을 벌었을 때, 이발 했을 때. 집을 샀을 때, 예쁜 아내를 얻었을 때. 마약 - 엑스타시 (끝내준다는 것)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요 이후의 아픔은 지옥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도 누렸던 기뻐했던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4사도 바울은 빌1:3-4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기쁘고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생각할 때마다 억울하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인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허황된 것이거나, 거짓된 것이거나,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병들었다고, 지금 좀 어렵다고 빼앗기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내 마음에 있는 충만한 기쁨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바로 이런 기쁨을 위하여 주님을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귀신이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한 성도님들의 얼굴을 보고 들어오려다 말고 도망가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충만한 얼굴엔 귀신이나 불안이 들어올 수도 없습니다.
넘쳐나는 기쁨으로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늘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외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절하고 신경질을 내며 욕하고 소리 지르는데 곁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참 기쁨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 기쁨은 배가 고파도 감옥에 들어가도 병들어도 모함과 배신을 당해도 죽음을 맞아도 항상 솟아나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5:41‘잊혀진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책에 나오는 김요석 목사님이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한 교수님이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않더랍니다. 김요석 목사님 혼자 손을 들었답니다. ‘당신은 어디서 온 학생이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당신, 하나님을 믿는다는데 하나님을 만나나 보았습니까? 만났다면 하나님과 악수해 보았습니까? 그 손이 차가웠습니까? 뜨거웠습니까?’ 연속적으로 묻는데 대답을 못하겠더랍니다.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목사님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강의를 했는데 세미나 도중에 나이 지긋하신 목사님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것 같군요.’ 자기는 독일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고 외쳤는데 여기서는 목사님들이 ‘당신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것 같다.’고 하니. 마음에 충격을 받아, ‘목사님,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였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목회를 해봐야 합니다.’하더랍니다. 그래서 소개해준 교회가 전라도 나환자촌이 사는 영호교회였습니다.
처음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교인들이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눈길을 피하더랍니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는데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멍 다섯 개뿐이었습니다. 눈도, 코도, 입술도 없었습니다. 양손조차 다 끊어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한 가지 생각만 했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천천히 설교 원고를 정돈하다가 교회 문을 나서려는데 얼굴 없는 그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다가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하면서 손가락이 없는 손을 내밀더랍니다. 내민 손이니 안 잡을 수도 없고 할머니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그냥 올려놓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 때 그 할머니가 우시더랍니다. ‘할머니 왜 우세요?’ 했더니 ‘목사님, 전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건강한 사람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제 손을 잡아주시니 너무 기뻐서.....’ 이렇게 울먹이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목사님은 너무나 부끄러웠답니다.
그 때 갑자기 깨달아졌습니다. 독일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말이 다시 귀에 들려왔대요. ‘당신은 하나님을 만나봤소? 악수를 해봤소? 체온을 느껴봤소? 따뜻합니까? 차갑습니까?’ 그 순간에 ‘아! 지금 내가 우리 주님 손을 잡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김요석 목사가 사랑이 많아서 나환자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까? 그는 도망가려 한 목사입니다. 누가 은혜를 끼친 것입니까?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는 일년동안 일하기로 하고 그곳에 갔는데 하루에 한 끼 먹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수년 동안 계속해서 사역을 해왔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독일에서 그의 주임 교수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내가 은퇴할 날이 가까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후임으로 당신 밖에 없다. 빨리 들어오라’ 독일에서 교수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그것도 동양인 목사를 후임으로 세우겠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러나 김 목사님은 그 편지를 받고 아무리 기도해 봐도 자기 한 몸 호강하겠다고 양 떼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못 갑니다. 교수님’이라고 편지를 써 보냈는데, 또 편지가 왔습니다. 아무 말 하지 말고 되도록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 떼를 버려두고 갈 수 없노라고 또 다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그 교수가 직접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 교수는 그가 목회하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고 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김 목사는 한국에서 예수님과 손잡고 목회하고 있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한번은 중국에 나환자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중국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반이라 아직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국교가 맺어지기 전이었지만 기적적으로 중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나환자촌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관리들은 ‘우리나라는 지상 천국인데 무슨 나환자가 있소?’라고 입에 발린 대답만 하더랍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기도하면서 수소문 했는데, 아침내 나환자촌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위층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그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국 공무원은 조금 이상한 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공무원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나하고 내기를 하나 합시다’ ‘무슨 내기를 할까요?’ ‘주량이 누가 센지 한번 내기합시다. 당신이 지면 못 가는 것이고, 내가 지면 안내하지요.’ 그리하여 누가 주량이 센가 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배갈이라는 술을 주는데 얼마나 독한지 큼직한 잔에 가득히 부어 놓고 성냥불을 대자 불이 확 붙더랍니다. 목사가 언제 이런 술을 입에 대어 보기라고 했겠습니까? 그는 술잔을 놓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왜 이 잔을 마셔야 되는지 아시지요?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잔에다 입을 댔는데 물맛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죽 들이켰습니다. 그랬더니 상대방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와, 대단하시네요. 한 잔 더 합시다.’ 또 한 잔을 마셨습니다. 역시 물맛이 났습니다. 지기 싫었는지 상대방은 한 잔을 더 하자고 했습니다. 세 번째 잔도 동일하게 물맛이 났습니다. 상대방은 세 잔도 채 마시지 못해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내기에 이겨 결국 나환자촌에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의 사도라고 하는 존하이드 선교사는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변명하거나 따지지 않고 십자가의 사랑이 마음속에서부터 흘러넘치기까지 기도하고 속 뒤집어놓는 사람을 만났답니다.
‘사람을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먼저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빠지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 교회가 얼마 전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만한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지난 32년 동안 숫자로는 성공을 했는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드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영적 성장의 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교회 생활을 오래하고 열심인 사람이 오히려 영적 성장은 더 낮았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예배, 성경 공부, 소그룹, 자원 봉사, 전도 등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을 돌렸고, 거기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고, 교회는 날로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교인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설교, 교회 모든 프로그램 등 전반적인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뿐만이 아니고 우리 교회도 심각하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2022년 6월 20일 오전 8: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