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4-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4본문에서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을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거하다는 것은 밖에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다 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잘 나와 있습니다."
계3:20에"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이 말씀을 따라 우리는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거하지 않는 삶이란 예수님을 마음 문 밖에 세워 놓고 사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주님과 아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간섭을 받기 싫어서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둡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해놓고 산다는 말입니다. 한참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가끔 아쉬우면 ‘예수님, 제겐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데요’하고 도움을 구하는 삶이 바로 예수 안에 거하지 않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할 때 항상 방관자로 일관 합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살아갑니다.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방관자들은 허무 의식과 함께 이방인의 성향을 보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방인의 특징은 한마디로 외로움이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문 밖에서 방황하면서도 문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해 아기까지 낳았지만 부인을 아내로 생각지 않고 한 여자로 봅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프면 곧 자신의 아픔이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건만 아내나 자녀에게 남을 대하듯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 남의 교회 말하듯 합니다. 교회의 실수가 나의 실수이고 교회의 부족함이 나의 부족함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아내나 자식의 잘못에 대해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 나의 잘못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내를 야단치는 남편은 누구인가요? 아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가요? 자신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며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방관자들의 특징입니다.
한 남자는 한 여자의 남편이요, 한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녀는 그 열매입니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내는 서로에게 방관자의 자세를 보여선 안 됩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는 것입니다. 방관자의 병이 깊은 사람은 본인에 대해서도 방관자의 자세로 바라봅니다.
‘거하다’는 것은 문 밖에서 서성이며 비판하거나, 남의 일인 양 방관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 참여자가 되고 주체가 되며 주인 의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2‘거하다’는 말은 ‘관계를 맺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손님을 함부로 식탁에 초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식탁에 초대 받으면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식탁은 단지 배를 채우는 장소라기보다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모시고 함께 먹고 마시면서 사랑과 존경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즐거워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먹고 마시는 삶이요, 마음을 터놓고 예수님께 사랑과 존경을 드리면서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생명되신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거하다’는 것은 상호 보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거하는 것은 일방향이 아니고 쌍방향입니다. 여자 없이 남자만 존재할 수 없고, 부모 없이 자식만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먹이고 속을 썩이는 자식도 나의 자식이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게 하는 남편도 나의 남편이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선생만 있고 제자가 없다면 교육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목사만 있고 성도가 없다면 목회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대통령만 있고 국민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곧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동성애자들만 존재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한다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막히고, 구원의 길, 축복의 길도 막히게 됩니다.
기독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만 그 도덕과 윤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참여해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의 주체는 아닙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고아원과 양로원 등 구제 사업이 일어나지만 기독교가 교육이나 의료 그리고 구제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사회의 구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 사회 활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도 좋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식한 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