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스승과 제자 관계, 친구 관계, 학교 동창 관계, 직장 동료 관계, 성도 관계 등 모두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관계가 좋으면 행복하고, 관계가 깨어지면 마음이 불편하게 됩니다.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지면 다 깨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 회복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시는 것이 요15장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했을까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라면 하나님은 농부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나무와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생명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늘 주님 안에 있어야만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가지가 잘린다고 나무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잘리면 가지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나무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포도나무 비유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농부가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잘 되어 있으면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농부의 마음도 기쁨이 가득차고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반드시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데,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잘난 척하고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한낱 보잘 것 없는 쓰레기나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맙니다. 가지는 항상 나무에 붙어있어야 생명력이 유지됩니다.

2농부가 관리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농부입니다. 농부가 관리하는 포도나무와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포도나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포도나무를 그냥 자라게 두면 잎만 무성할 뿐 열매를 거의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농부가 관리를 해야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농부가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합니다. 먼저 가지치기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15:2

나무에 과실을 많이 맺게 하려면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다른 가치들의 보호 차원에서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9

안타깝게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매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매를 안 맞고 잘하면 좋겠는데, 그게 안될 때가 많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매를 자주 맞는 자식이 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고약하고 고집스러워 매를 많이 맞는 아이들이 나중에 큰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았습니다.

믿음이 좋고 강한 분들 중에는 하나님께 두들겨 많은 경력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어떤 분은 사업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건강이 잘못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자식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징계를 잘 받고 나면 하나님께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습니다. 풍성한 과실을 맺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님께 아주 헌신적입니다. 징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과실을 많이 맺기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혹시 예수를 믿은 지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징계를 받아 본 일이 없습니까? 얼마나 잘못 했으면 징계를 받느냐고 속으로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잘해서 한 번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면 감사할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받지 않았다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사생아가 아닌가? 하고요.

다음으로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농부는 나뭇가지나 과일에 벌레 해충 이물질 발생했을 때 농약을 쳐서 병충해를 막아 줍니다. 주변에 잡초나 오염 물질을 제거해 줍니다. 바람이 불거나 폭풍이 닥칠 때 낙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과일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하나씩 종이로 싸서 좋은 상품이 되도록 관리해 줍니다. 이런 관리들을 통해 깨끗하고 좋은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열매를 원하시면서도 우리에게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명령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전부 읽어 보십시오. ‘열매를 많이 맺으라’는 명령이 기록된 곳이 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절로 맺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4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일은 나무가 다 해 줍니다. 흙에서 영양분과 수분을 끌어올려 가지에게 충분히 공급해 줍니다. 가지는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가만히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몸부림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해지려고 해도 안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하시지 않고 ‘내 안에 거하라’는 명령만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15장을 보면 ‘안에 거한다’는 말씀이 10번 정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이 가장 대표적인 말씀으로 이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으면 절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되는 현상이지만, 내가 예수 안에 거하는 데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목사님,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자동적으로 예수님 안에 있지 않습니까?’ 옳은 말입니다.

예수님과 나 사이가 구원자와 구원받는 사람의 관계로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우리가 어떤 집에 태어나서 호적상 그 집의 아들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집의 식구처럼 살려면 호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족 관계를 위해 특별히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 관계를 토대로 예수 안에 거하기를 노력하는 우리 자신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2022년 6월 15일 오전 6:12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