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15: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1절에는 참 포도나무와 농부가 나왔는데 2절에는 가지가 추가로 나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나오는데 이 가지가 누구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리켜 가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있어야 가지라고 합니다.
가지는 따로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본질입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와 같이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가지가 독립을 했을 때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나무에 붙어있다고 다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있어도 잎만 무성한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해서 열매를 맺을 것도 같은데 막상 가보면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농부가 어떻게 합니까?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요15:2이것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나무에 붙어있다고 다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교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니고 목사다 장로다 해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가지를 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가지를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상처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워하십니다. 가지를 제거해 버리는 분은 농부입니다.
농부는 왜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하실까요?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하나님이 농부시라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은 많은 소출을 얻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마다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 받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에만 머물면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습니다. 하고 고백함으로 구원을 얻기만 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신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도 소원 중의 하나지만, 낳고 나면 또 다른 소원이 생깁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식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바라지만, 일단 낳고 나면 보다 중요한 소원을 품게 마련입니다. 그 자식이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소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향한 더 큰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잎만 무성한 가지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무성한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인으로 하여금 쉬게 만드는 그런 가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성한 잎이 주는 그늘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저는 열매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과 그를 따르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다’
성경에 보면 전도의 열매를 열매라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도 열매라고 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 헌금하는 것도 열매라고 합니다.
"23에는 특별히 인격적 성숙을 일컬어 열매라고 합니다."
갈5: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격을 성숙시키는 요소들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닮아 우리 인격이 성숙해 가는 것을 일컬어서 열매라고 말합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의 삶을 일컬어서 과실 또는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히13:15에는"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5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붙어 있는 포도나무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나무라고 한다면 우리의 열매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 나무는 예수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격과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열매라는 말입니다.
포도나무가 포도를 맺는 것 같이 예수 나무는 예수를 맺어야 합니다. 본문 8절 말씀이 이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8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예수 닮은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고민하며 들어야 합니다. 과연 내 인격이 주님을 얼마만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얼마나 예수님을 따르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 까지도 꿰뚫고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만족하실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신앙생활을 10년을 해도 자식들 눈에 전혀 달라진 것이 보이지 않는 부모. 장로, 권사가 되어도 배우자에게 존경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부부 관계, 이웃의 눈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가정 등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산다면 많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해마다 포도 농사를 짓는 농부는 그 포도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정성을 쏟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전지, 쉽게 말해서 가지치기입니다. 대개의 과일 나무가 그렇듯이 가지와 잎이 무성하면 열매가 충실치 못합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농부들은 가지치기를 해줍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2제가 어릴 때 저희 집 감나무가 해 걸이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해는 감이 많이 열리고, 그 다음 해에는 감이 별로 안 열렸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꽃이 피는 대로 그냥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과 농사를 하는 농부는 봄이면 손길이 바빠집니다. 사과 꽃 몇 개를 빼고는 다 땁니다. 채소 농사도 솎아내기를 합니다. 최고의 품질을 생산하기 위함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15:2성경의 영적 원리는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있는 사람은 더 주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습니다. 사회주의 논리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더 생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없어집니다. 영적인 냉혹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멀리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지치기입니다. 이것은 우리 정서와 맞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적인 정서와도 맞지 않는 논리입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고 다 가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하나님이 사정없이 자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가지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내게 나쁜 성격이 있습니다. 내게 나쁜 습관과 인격이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 그것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내가 죽지 않을 만큼 치십니다. 그것이 붙어있으면 나중에 여러분의 인격까지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수술을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가지치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지치기를 할 때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너무하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수술을 하십니다. 실수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것만, 무성한 것, 다른 과실의 양분을 도둑질해가는 가지만 골라서 하나님이 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지치기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 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기 위해 사정없이 도려냅니다."
마3:10절을둘째 하나님의 가지치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 하나님은 함부로 가지를 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 잘못된 가지만 골라서 용서 없이 친다는 것입니다. 셋, 따라서 꼭 필요한 것은 남겨두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합니다.
인생에서 겪는 고통의 의미를 하나님의 가지치기 원리로 해석하십시오. 왜 내가 고난을 받는가요? 죄 때문에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고통을 겪을 때 자신을 욥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욥과 같은 인물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맞아도 싼 짓을 했기 때문에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욥이든 아니든 내 안에 거품 군더더기 불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형편대로 하십니다. 우리가 죽을 것 같으면 안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수준만큼 손을 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치기를 하실 때 여러분은 세 가지를 명심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가지치기를 받아들이십시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병들면 병든 대로 실직을 했으면 실직한 대로 자신을 받아들이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인내하십시오. 발버둥 치면서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받아들이고 인내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하십시오. 결과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고 다 가지는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가지치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열매를 더 깨끗하고 소중하게 관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지치기의 결론은 나를 살리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수술은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합니다. 수술 자체는 고통스럽지만 수술을 해야만 살릴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2022년 6월 12일 오전 8: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