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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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다락방 강화인데요, 다락방 강화 마지막 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이해되지 않았던 말씀들이 이해가 되고 기도할 때 진리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이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아주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나의 평안 : 예수님의 평안, 환경을 초월한 평안,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 평안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무리를 떠나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게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대부분이 갈릴리 어부 출신들인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니이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환경을 초월한 예수님의 평안입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다’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두려워하시던가요? 아닙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13:32-33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예수님이 누리시는 이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계집 여종 앞에서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었습니다. 왜 부인했나요? 두려우니까요. 그런 베드로가 성령을 받으니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를 주장하게 됩니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12:6-7

주님이 주신 평안함이 있으니까 사형 집행 전날에도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형수를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곳이 서울 구치소입니다. 이곳에서 수많은 사형수를 전도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사형수는 동물적 감각으로 자신이 사형 당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힘센 간수 여러 명이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형수가 최후의 발악을 하는데, 똥오줌을 싸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박효진 장로님이 서울 구치소에서 근무하실 때, 산 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사형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수양이 잘 되었는지 단 한번도 화내거나 남을 비방하거나 흉보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분도 사형 집행을 하려니까 온갖 욕설을 다하며 질질 끌려 사형장으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형수 가운데 저 사람이 과연 구원 받았나 할 정도로 염려되는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성령 충만을 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세상 사람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형수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너무 걱정이 되어서 서울 구치소 신우회에 알려서 이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며, 박 장로님이 당번이 아닌데, 당번으로 자청해서 사형 집행장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제 발로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서 사형장에 가서 마지막 소원이 있다며 찬송을 부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찬493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염려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그리고 눈을 감고 여러분 모두 예수를 믿으시기 바란다면서 평안한 가운데 천국에 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그를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네 가지 특성을 갖습니다.

1환경을 초월한 평안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좋을 때 생기고 나쁠 때 사라지는 평안이 아닙니다.

2영적 평안입니다.

3내면적 평안입니다.

4완전한 평안입니다.

다윗도 이러한 평안을 얻었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3:5

어떤 환경에서 외친 고백입니까?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을 다닐 때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들의 반역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평안히 누워 자고 깰 수 있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를 주장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평안에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이 있는가 하면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도 있습니다.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의 특징은

1짧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2물질적이고 육적인 것입니다

2외면적인 것입니다

4불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을 구하는 농부를 보고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16-20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평안이 우리를 주장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5

성층권 - 구름 위, 폭풍우도 없고, 비바람도 없고, 잔잔한 하늘

인생살이에도 성층권이 있습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절망, 불안, 초조로 살고 싶지 않고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층권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내 마음이 성층권에 들어가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평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환경이 심히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성층권에 들어가 있으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마음을 주장하므로 마음이 늘 평안한 것입니다. 행복은 평안에 있습니다. 잘 먹어도, 잘 입어도 평안하지 않으면 행복은 없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닥치고, 다윗처럼 수많은 대적들이 나를 둘러싸고, 비바람이 몰아쳐는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환경을 초월한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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