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하신 일을 일컬어서 흔히 신학적으로 계시라고 합니다. 베일에 가리워 있던 것을 하나님이 열어 보게 하심으로 제자들이 오묘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도 친히 만나 보았습니다. 수많은 표적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나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되자 모든 것이 밝히 깨달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록된 것이 우리가 들고 있는 신약 성경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시는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성령의 영감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자 영감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완성된 후 1,8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 66권 외에 추가된 성경이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추가한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하신 일은 계시였습니다. 그들은 그 계시로 인해보고 들은 모든 것을 깨달았고,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그런 초자연적인 영감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실까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이 약속은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다만 제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리를 깨달았지만, 우리는 제자들이 기록해서 남겨 놓은 계시의 말씀을 토대로 성경 말씀을 깨닫고, 기억하고, 생각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놓고 신학적으로 조명이라고 말합니다.
무대에 조명이 있어서 그 무대의 연출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이 조명의 역할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도 우리가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마음 눈을 밝혀서 그 말씀을 환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성령의 조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2:12어거스틴은 성령의 조명을 설명하기 위해 알아듣기 쉬운 비유를 들었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이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합니다. 눈이 좋아도 캄캄하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비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눈은 우리 스스로 떴다 감았다 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은 성령께서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이것을 조명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감동하셔서 우리 마음 눈을 열어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7-19칼뱅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 우리의 지성과 마음이 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비밀한 일을 깨닫고 그 말씀을 기뻐할 수 있는 높은 경지로 끌어 올려 집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이성으로 노력해서 보려고 해도 보지 못했던 것을 환히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조명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성령님의 조명이 있습니까? 성령을 펴 놓고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밝게 깨달아지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 오릅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오늘같이 어려운 설교를 듣기 힘듭니다. 입담이 좋아서 구수한 이야기로 울렸다 웃겼다 하는 설교를 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나, 안 받은 사람이나 구별없이 웃고 즐거워할 수 있겠지만, 재미와는 거리가 멀고 딱딱하기만 한 설교를 3-40분이나 듣는 것은 성령의 조명하심이 아니고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조명을 좀 더 잘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지만, 우리가 성령님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주시기도 하고, 침침하게 내버려 두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 눈을 환하게 밝힐 수 있도록 태도를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 눈을 열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으며, 우리 영혼이 기뻐 춤추는 역사가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분의 표현대로 우리 세포가 춤을 추는 역사가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지도자들로부터 부지런히 배우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지도자를 세우신 것을 가르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딘3: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성경에는 지도를 받지 않아도 읽자마자 금방 깨달아지는 말씀도 있지만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말씀도 꽤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다 깨달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다른 지도자로부터 늘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15:1-2"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이러나 말합니다. 이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시가에 관하여 말합니다. 이후에 야고보가 결론을 냅니다."
행15:6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행18:24-262말씀을 사모하고 기다리십시오.
성경을 편다고 해서 말씀이 금방 다 깨달아집니까? ‘주여,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한두 마디 기도한다고 금방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2:2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요, 젖입니다. 그리고 사모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포테오’인데, 이 뜻은 얻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듯이 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42:1이 갈급하다는 말이 바로 신령을 젖을 사모하라고 할 때 사모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3순종하십시오.
말씀을 깨달았으면 이제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24-27여러분, 말씀은 순종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지식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만 많이 알면 교만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8:1예수님 당시에 가장 교만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말씀을 가장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서기관, 바리새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성령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을 쌓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우리가 변화받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할 뿐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고 순종할 때 변화되고 삶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022년 6월 8일 오전 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