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7-1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17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여러분 영을 다 믿으면 안됩니다. 거짓 영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일4:1-32세상은 능히 보혜사 성령님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영이니시까 볼 수가 없습니다) 알지도 못함이라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 감각, 지성, 지식으로는 성령님을 알 수 없습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아도 성경 지식으로는 결코 성령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3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신비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영으로 계시게 된다고 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어떻게,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시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성령 하나님뿐 아니라, 성자 예수님까지 모시고 사는 놀라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보혜사와 땅에 있는 보혜사 두 분을 모시고 사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사건을 신학적으로 내주하심 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8여기에서 내가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만나시겠다는 의미로만 보면 안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오심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는 말씀에는 예수님의 진한 사랑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인하는 것처럼 인생은 고독합니다. 그런데 이 고독한 인생길을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사실 제자들과 함께 했던 3년 동안 예수님은 어머니 아버지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그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떠나시게 되자 뒤에 남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고아처럼 여겨져 한없이 슬퍼졌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7이제까지는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면 예수님을 찾아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그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고 근심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때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요, 그보다 큰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너희는 고아가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모시고 있는 성령님을 우리 또한 모시고 있습니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마음에 계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 마음 속에도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한 유대인 청년이 엑클레이 라는 사람을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왜 나에게 자꾸만 예수를 믿으라고 하십니까? 내가 무슨 이유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십자가에 처형된 젊은이를 내가 왜 믿어야 합니까? 그러자 엑클레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바로 내 마음 속에 살아 계십니다. 나는 날마다 그분과 함께 동행 하면서 그분과 이야기하고 그 분과 함께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극복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내 안에 계신데 보이지 않으십니까?’
유태인 청년이 그 분을 볼 리가 만무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엑클레이는 집으로 돌아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런 찬송을 썼습니다.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온 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 사셨네
그 은혜로운 손길 부드러운 음성
주 예수 나와 함께 늘 계시네
예수 예수 늘 살아 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 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 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이 고백이 어떻게 엑클레이 한 사람만의 고백이요 찬양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찬양과 고백도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지금처럼 멋있게 제본된 성경책은 구경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심지어 신약 성경조차 제대로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능력있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있는 예수님은 잘 몰라도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이신 성령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핍박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고, 결국 대제국 로마도 300년이 채 안되어서 복음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결은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핍박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로마를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8성령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으로 더 충만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고,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성령 충만 받기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