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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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어떤 권사님이 딸이 출산을 하게 되자 도움을 주고자 딸집으로 가셨습니다. 가보니 딸에게 가장 필요한 게 휴식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3살 난 손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딸이 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손녀를 카 시트에 앉혀 안전벨트를 채우고, 권사님도 안전벨트를 한 뒤 차고에서 차를 뺐습니다. 하지만 도로에 들어서기도 전에, 손녀가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서 권사님의 어깨너머로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권사님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린 후에 다시 손녀를 자리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웠습니다. 차는 다시 출발했지만, 얼마 못 가서 손녀는 자리에서 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했는데, 이번엔 권사님이 돌아와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손녀가 일어나 있었습니다! 길가에 정차해서 운전석에 앉아 세 살짜리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데, 손녀를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며 갖은 방법을 동원하면서, 카시트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 게 좋다는 걸 이해시키려 했지만, 손녀는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권사님은 ‘하고 있으면’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얘야,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있으면, 할머니 집에 가자마자 찰흙놀이를 할 수 있단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습니다.

‘얘야,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있으면, 할머니 집에 가서 빵을 만들 수 있단다.’

이번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권사님은 다시 ‘얘야,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있으면, 가게에 들러 네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있으면’ 접근법은 고집 센 손녀가 안전벨트를 매고 자리에 앉아 있도록 설득하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조용히 기도했을 때 지혜가 떠 올랐습니다.

권사님은 손녀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안전벨트를 앞으로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얘야, 할머니는 이 안전벨트가 할머니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사고가 나도 할머니는 안전할 거란다. 하지만 넌 그렇지 않으니 안전할 수 없겠지? 그리고 할머니는 네가 다치면 정말 슬플 것 같아.’

손녀는 물끄러미 할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초조하게 손녀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마침내 손녀는 눈을 크게 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안전벨트를 하라는 건 절 사랑해서 그러신 거죠?’

권사님은 차에서 내려 손녀를 카시트에 앉힌 후 물었습니다. ‘카시트에 계속 앉아 있어 줄래?’ 손녀는 과자 가게에 갈 때까지, 그리고 가게에서 집으로 갈 때 까지도 계속 안전벨트를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한 규칙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카시트에서 안전벨트를 잘 매고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손녀는 자신을 불편하게만 보이는 것들을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안전벨트가 자유를 제한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손녀처럼 우리는 계명을 제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율법이 자유를 제한하고, 선택의지를 앗아가고, 성장을 막는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을 믿는 믿음의 행동인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신앙생활은 쉬워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순종만 하려고 하는 그곳에는 의무감만 있습니다. 의무적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하면 의무감을 넘어서 버립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니까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7년을 수일같이 느껴졌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일은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무로 하는 일은 힘이 듭니다.

우리는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교회가 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믿음만큼 교회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왜 성도들의 믿음만큼 힘 있는 교회가 될까요? 그것은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도 적당히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게 계명을 지키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계명을 지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하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우상에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헌금을 해도 그 자세가 다릅니다.

‘맨솔래담’으로 백만장자가 된 앨버트 알렉산더 하이드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경제공황 시절에 10만 달러의 빚을 져 망했는데, 그가 빚잔치를 한 후, 새롭게 결심하고 시작한 것이 십일조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제정신이냐며 비난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빚부터 갚아야 한다며 그동안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갚기 위해 십일조를 철저히 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십일조를 계속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재기하여 10의 2, 3, 4조까지 하다가 10의 9조까지 드리는, 전설적인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 이야기만 해도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이 없는 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작은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환난과 시험이 와도 쉽게 넘어집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죽어 마땅한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주셨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믿음이 큰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말하면서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큰 죄라고 생각해서 잘 지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어 보이는 사람 중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 홀로 계신 부모는 공경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 계명은 지키지 않아도 죄가 아닌 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0:8). 그러므로 주일 하루를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명이라도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이 말씀도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일을 해도 적당히 눈치 보면서 사람에게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하고, 대접할 때에도 적당히 하지 말고 주님을 대접하듯이 해야 합니다. 말할 때에도 함부로 말하거나, 남을 깔보며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말하듯이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만 지키고, 하기 싫은 것을 지키지 않음에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렇게 살면 열매가 좋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계명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2022년 5월 29일 오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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