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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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요12:27-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요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 예수님이 왜 이렇게 괴로워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수치와 부끄러움 그리고 고통을 생각하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2-34

예수님은 자신이 며칠 후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한 일을 미리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자기가 당한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어린 나귀를 타고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들어오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무리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발가벗기는 수치와 모욕, 부끄러움, 그리고 오랜 시간 십자가에 매 달려 있어야 하는 고통과 더불어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을 생각할 때 마음이 너무 괴로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연약한 육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앞두고 괴로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붙들고 하소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께 부르짖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요12:27

예수님은 심한 두려움에 빠진 자를 도우십니다. 사람에게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고통을 예수님은 잘 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2:18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심한 두려움과 좌절감으로 고통을 받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하지 마십시오. 도움이 되지 않고 상처만 받을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해서 무조건 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으며 감당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27절 끝 부분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요12:27

예수님께서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은 이 고통을 없애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온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아버지 앞에서 표현한 것이지 그 고통을 없애 달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만일 예수님께서 고통만 면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 고통을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기 죄 값을 치루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져 주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해서 그것이 면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지불하는 사람이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하면 그것으로 그 고통은 끝나 버립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자원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 신장을 기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신장 하나를 떼어내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했는데 심리적인 고통이 너무 큽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너무 두렵습니다. 죽을 것 같아서 도저히 수술을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그의 고통은 끝납니다.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이 고통의 때를 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은 아니라고 아버지께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요12:28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자신의 고통, 수치, 부끄러움, 괴로움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러워 질수 있습니까?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통해서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최고로 영광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이것보다 더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를 나타낼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에 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성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요12:29-30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을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들은 것이 아닙니다. 곁에 서서 들은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천둥이 울었다고 하며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였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한국말로 설교를 한다고 해서 다 알아듣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말씀에 온 영혼이 충격을 받아 새 사람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말씀을 꼬뚜리 잡고 대적하는 바리새인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소리가 난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제자들이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무엇이겠습니까? 제자들의 눈에는 이 십자가의 죽음은 결코 승리로 비추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 죽음은 개죽음이며 힘이 없어서 세력 다툼에 밀려서 죽은 것이지, 어떻게 영광스러운 죽음이여 승리의 죽음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늘의 음성이 필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승리의 죽임이요,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사단의 머리를 밟는 승리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이 승리일 수 있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을 창으로 찌르고 웃는 자들이 이긴 것이지,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죽으신 것이 어떻게 승리일 수 있습니까?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2:14-15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2-24

2022년 5월 26일 오전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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