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요13: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은 33절에서 제자들에게 아직은 그들과 함께 있겠지만 장차 그들을 떠나갈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해진 제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질문할 기회만을 찾고 있을 때 베드로가 평소의 성격대로 용기를 내어 주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사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는 이 질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인기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이 인기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가 아닌 ‘내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눈을 뜨면 ‘내가 오늘 뭘 사야 되는데 어디로 갈까?’,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좀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어느 음식점으로 갈까?’ 하는 생각만 합니다. 조금 형편이 되는 사람은 ‘오늘 몸을 좀 풀고 싶은데 어느 골프장으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날마다 ‘내가 어디로 갈까?’하는 것만 생각하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질문하며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생활이란 과연 무엇인지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러 나와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것도 아주 중요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도 신앙생활이요,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보려는 것도 신앙생활이요, 교회를 통해서 이런 저런 봉사를 하는 것도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는 질문을 하며 주님이 가시는 길을 나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이것이 바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지 교인을 삼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마28:19). 제자가 누구입니까? 스승이 가는 대로 따라 가는 사람이 아닙니까? 스승이 하는 일을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모든 면에서 스승을 따르며, 심지어 스승이 죽는 곳에서 나도 죽겠다고 하는 것이 제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바로 그러한 제자가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주님 가신 길 저도 걷게 하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예수를 믿습니까? 왜 교회에 다닙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구원받는 것에만 만족하고 머무른다면 그것은 반쪽 신앙생활 밖에 안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궁극적인 목적을 상실한 방향 없는 신앙생활이라고 할 것입니다.
일단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얻었으면 그 다음에는 눈을 돌려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뜻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뜻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먼저 구원받게 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내 이웃이 구원 받고, 나를 통해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옴으로 세상이 구원받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 같은 것을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명령하옵소서. 내가 순종하겠나이다. 하나님이 내게 희생을 요구하시면 적은 것이라도 주님의 제단에 올려놓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잘되고.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자기의 미지근한 자세를 감추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 이런 교인이 많아질수록 기독교 정신은 점점 천박해집니다. 자기만 아는 신앙생활, 이것은 천박한 신앙생활입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뜻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조금만 강하게 해도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데’라며 반발합니다. 그리고 깊은 영적인 이야기나 내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왠지 불안해하는 믿음의 노쇠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는 이런 분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지쳐 있습니다. 세상살이를 하느라고 너무 지쳐있는데 그런 설교를 하시면 우리는 감당할 힘이 없어요. 가뜩이나 세상의 문제들 때문에 에너지를 몽땅 다 쏟아버렸습니다. 이런 때 교회가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요 격려입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십시오.’ 이런 요구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처 입은 자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살 의욕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제가 위로나 격려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신앙생활이 온통 그런 것인 줄 알고 있는 자세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면 그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이제 그분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 가는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왜 이 모양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위로나 받으려고 하고, 복이나 받으려고 하는 천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36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요13:362022년 5월 18일 오전 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