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1-3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요13:31

그가 나간 후에 : 가롯 유다가 배반을 하고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받으셨도다

사랑하는 제자 가롯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배반한 가롯 유다로 인하여 괴로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으면 배반당한 아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 가롯 유다의 배반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로 무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고상하신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니까 가롯 유다의 배반의 아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모든 형들이 ‘네 꿈이 이루어지나 보자’하고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의 꿈은 좌절되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훼방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으나, 대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계획은 방해받지 않고 다윗은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신20:3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빌1:28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요13:32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을 죽음을 죽으심으로 죄로 허물로 인하여 마귀의 종이 된 우리를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매, 하나님께서도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입술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무든 무릎으로 그 앞에 꿇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혀 주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는 높임을 받습니다

주께 영광을 돌리면, 영광을 받습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잠4:8

하나님을 모욕한 골리앗을 보고 견디지 못한 다윗을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삼상17:36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풀무불도 두려워 아니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하나님이 높여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왕이 준, 진수성찬을 거절한 다니엘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이제 몇 시간 후면 십자가에 달려 죽이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40일을 같이 계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천국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지요. 오직 예수를 믿어 죄 사람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 가는 곳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은 유대인은 결코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요13:33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4-3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악성 췌장암에 걸려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고 면회도 금지된 병원 독방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는 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미 성인으로 의사 일을 하고 있는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고지식하고 완고하고 감정이 메말라 있어서 자식들에게 애정표현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나 봅니다. 그리고 자식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고 항상 자기주장대로 해 버리니까 아들이 나중에는 아버지만 보면 가슴에서 분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어지고, 결국은 둘 사이가 멀어져서 수십 년 동안 겉으로만 부자 사이지 내적인 사랑이 오고 가는 일이 없는 삭막한 관계를 유지해 왔나 봅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돌아가실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아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병문안을 와서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아버지를 꽉 껴안았습니다. 아들이 느닷없이 자기를 껴안으니까 아버지는 잔뜩 긴장해서는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고슴도치처럼 빳빳하게 굳어 가지고 안기지를 않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들은 그 다음 번 병 문안 와서 다시 아버지를 안았습니다. 여전히 고슴도치처럼 빳빳이 안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의 마음에 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건 정말 소망이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자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를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하고, 아버지는 진정 마음으로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아주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문안을 갈 때마다 아버지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아버지가 말을 잘 안 들으면 ‘아버지, 팔을 저에게 둘러보세요. 그리고 좀 꽉 껴안으세요. 그래요, 됐어요. 좀 더 힘 있게 껴안아보세요.’ 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계속 유도했습니다.

아버지의 긴장된 자세가 풀어지는 데는 그로부터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껴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점점 깊은 애정과 염려를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2백 번째의 포옹이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이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얘야, 널 사랑한다.’ 평생 아버지로부터 들어보지 못한 사랑의 표현, 애정의 표시를 처음으로 들은 것입니다.

해롤드 블룸필드라고 하는 그 아들 되는 사람이 쓴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저를 2백번만 안아주셨나요? 2천 번도 더 안아주셨지요. 하나님이 처음에 절 안아주실 때 제가 어떻게 했어요? 뻣뻣했지요. 안기기 싫어 고개를 마구 쳐들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2백번이 아닌 수천번 수만번 안아주셨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하나님,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하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았어요?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5년, 10년 다녔지만 하나님이 안아주려고 하면 안기려 하지 않는 힘든 사람들이 많지요? 반응이 없지 않나요? 냉랭하지 않나요? 고슴도치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버티는 뻣뻣한 사람 많지 않나요?

하나님, 저를 안아 주신 것처럼 2백번도 좋습니다. 2만 번도 좋습니다. 주님 안아 주세요. 순복음 교회를 좀 꼭 껴안아 주세요. 그래서 우리 입에서 ‘하나님 사랑해요.’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무엇이 안아주는 것이며 무엇이 안기는 것입니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또 깨닫고, 또 나도 모르게 찬송하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안아주는 것이요, 안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감정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앞에 놓고,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는 말씀을 2천 번이든 2만 번이든 계속 듣고, 읽고, 묵상하고 깨닫고 나중에 그것을 다시 회상하고 고백하고 찬양하다 보면, 드디어 하나님의 사랑에 내가 푹 젖어 들면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 사랑해요.’ 하고 고백하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은혜를 받기만 하면 이 필립 블리스라고 하는 찬송 작가가 쓴 행복한 찬송을 신나게 부를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재미가 어디 있습니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의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신앙인의 특징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사랑 받는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세상을 살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천국에야 들어갈지 모르지만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예수님에게는 이제 제자들을 떠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시간이 불과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 예수님도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 이 ‘끝까지’라는 말은 ‘생명이 다하기까지’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라는 말도 되고, 제자들이 이 세상을 사는 마지막 날까지라는 말도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완전하게 사랑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심

아무도 그의 배반을 모르도록, 가롯 유다 자신만이 알고 회개할 수 있도록 배려하심. 제자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배려

베드로를 보십시오. 3년 동안 그렇게 예수님 뒤를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배웠고, 그래도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수제자로 대접받던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그 사람을 믿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위기 상황에 처하니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저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쓸개가 있느냐고 한방 먹여 주고 싶을 정도 아닙니까? 세상에 제일 괘씸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나를 따르라.’ 다시금 그를 사랑의 관계로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자리로 불러주셨습니다.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믿음이 병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살다 보면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자리에 가서 서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때도 주님은 여전히 가까이 계셔서 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끝까지 너를 사랑한다.’ 믿습니까?

이 음성을 들으십시오. 부요할 때만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쪼들리는 삶 속에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 버린 삭막한 삶 속에서 허덕일 때도 주님은 찾아 오셔서 ‘그래도 난 널 끝까지 사랑해.’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끝까지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을 지금 누가 받고 있습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믿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 인격이 파괴됩니다. 생활이 파괴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인격이 파괴되고, 생활이 파괴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심각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만 독차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병들어 가는 사람들, 심지어 인격이 파괴되어 가는 사람들, 삶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 찾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입니다. 하고 전해 주어 그들도 생명을 얻고, 고침을 받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여러분을 치료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비극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절망이나 원망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은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2022년 5월 17일 오전 7:09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