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요13:19-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요13:19예수님께서 일이 이뤄지기 전에 미리 말씀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의 배신을 막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스스로 선택한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담이 스스로 선악과를 먹기로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배신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힘으로 얼마든지 유다의 행위를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물리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힘으로 무릎을 꿇게 할 수는 있지만 회개를 시킬 수는 없습니다. 겁을 줘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을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스스로 가던 길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끝까지 가룟 유다가 회개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고독하셨을까요? 마치 자식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의 부모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비록 자식일지라도 방탕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부모인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성향이 아담에게, 가룟 유다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말씀하신 이유는 가룟 유다의 배신행위가 제자들의 공동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스승을 팔아넘겨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들고, 제자들의 공동체가 풍비박산 나게 되는 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이런 반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엄청난 일을 모르고 계셨단 말입니까? 19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알고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의 마음을 돌리려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의 길로 갔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에 흔들림이 없도록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용서하시길 원하셔서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신 사실을 언젠가 제자들이 알게 되고, 주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인류의 메시아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믿게 하시려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13:20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끝까지 품으시려 하신 이유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구원의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진리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장차 믿고 따를 사람들에 의해 구원의 진리는 계속 선포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해도, 천지가 뒤바뀌어도, 만인이 넘어져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 중에 하나는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요13:21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실은 가룟 유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마음 속에 있는 배신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결코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장담하거나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많은 사람이 주님을 버리고 떠날 때에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파송을 받아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 중 아무도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은 사실에서도 가롯 유다는 그 누구보다도 신실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여러분, 우리 자신을 믿지 맙시다.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념입니다. 믿음은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매 순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가시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12:7내가 아무리 주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내가 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교만해 지는 순간 우리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더 충성을 하십시오. 그러나 많은 일을 했다고 자고하지 말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런데 최후의 순간까지 예수님께서 이 배신자에게 보이신 태도는 너무나도 사랑에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배신을 말씀하시면서도 결코 유다를 지칭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없는 곳에서 유다에 대해 욕을 하면서 ‘저 친구 때문에 내가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받은 줄 알아? 저 친구는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없어. 사탄이야’라고 비난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만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하는 말씀은 ‘유다야, 나는 네 생각을 다 알고 있다. 너는 지금 매우 악한 생각에 빠져있지.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가룟 유다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지를 꺾지 않았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더욱 위장으로 일관했습니다. 22-25절 말씀을 봅니다.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요13:22-25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서로 의심했습니다. 아직도 베드로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 ‘내니이까?’ 라고 묻는 가룟 유다 한 사람뿐입니다. 유다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예수님을 팔자인지 너무나 알고 싶었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머릿짓을 하여 말하기를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이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요한은 옆으로 누워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운 것입니다.
요한이 주님께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주님은 떡 한 조각을 소스에 찍어서 주는 자가 그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빵을 소스에 찍어서 주는 것은 아주 귀한 애정의 표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애정의 표시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유다의 정체를 드러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유다의 정체를 알게 하셔서 그를 소외시키거나 박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너희들 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고 말씀하실 때 유다는 그 말을 알아들었고, 주님의 빵을 소스에 찍어 유다에게 주실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습니다.
만약 유다가 그 빵을 받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왜 저를 이처럼 사랑하십니까? 저는 이 떡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요즘 제 마음을 떠나지 않고 지배하는 것은 현상금입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더라면 그의 운명을 달라졌을 것입니다. 유다는 버림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떡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사탄이 유다의 마음 속에 들어갔습니다.
2022년 5월 14일 오전 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