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13:12-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2-14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높은 자일수록 더욱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교훈은 솔선수범입니다.
셋째 영적 교훈은 예수님께서 내리신 결론적인 대안입니다. 즉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발을 씻고 씻겨주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대안은 서로 발을 씻어주는 데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떤 배고픈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 한 상 주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긴 숟가락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지옥에 가봤더니 긴 숟가락으로 서로 먼저 먹으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긴 숟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면 흘리고 또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비난하고 비판하며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번에 그들이 천국에 가봤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긴 숟가락으로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주 평온한 가운데 행복한 분위기였습니다.
서로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진정한 승리를 말합니다. 진정한 승리란 윈 윈 게임 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동시에 모두가 승리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윈 윈 게임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아내가 행복할 때 남편도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할 때 부모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의 동역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말씀은 그런 의미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신도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에 불과합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것은 서로 물고 뜯고 치고받는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끄는 예수님의 대안입니다.
남북 관계도 윈윈 게임이어야 합니다. 남한이 살기 위해 북한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북한이 살기 위해 남한을 죽여서도 안 됩니다. 남북한이 동시에 잘 살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국내 정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간단한 말씀 안에 예수님께서 주신 복과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남을 살리면서 내가 살아야 합니다. 남을 망하게 하고 사지로 몰아가면서 내가 잘될 것을 바라면 안 됩니다. 남의 회사를 죽이면서 내 회사가 성공할 것을 바라면 안 됩니다. 다른 회사가 살아야 내 회사도 살고 동시에 두 회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서로 발을 씻겨주면 피차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아난다면 양자 간에 소리 없는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준다는 의미의 다른 하나는 서로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을 말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의 필요만 채우는 게 아니라 피차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마지막 의미는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문제는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인격을 믿을 때 축복된 사회를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방법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발을 남편은 아내의 발을 씻어주고 사장은 직원들의 발을 직원들은 사장의 발을 씻겨주며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며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여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 이 말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5본을 보여 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모델이 있을 때 그대로 복사하면 수많은 복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나름대로 새로운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본, 행적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뭔가를 하려면 어려움이 따르지만 본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 쉽기만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처럼 쉬운 것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이신 본을 그대로 따라하면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이 말씀을 공부한 후 남편이나 아내의 발을 씻겨 주고 감상문을 써 오라는 숙제를 내었다고 합니다. 어느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의 발을 씻어 주고 감상문을 써 오라는 숙제를 받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늘 해야지’ 했다가도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이제 다음 번 모임 때까지는 하루 밖에 안 남았습니다. ‘오늘은 꼭 숙제를 해야 돼. 무슨 일이 있더라고 해야 돼’ 아침부터 마음에 다짐을 하고는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눈을 꼭 감고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여보, 나를 따라 와요.’ ‘어디로 간다는 거야’ ‘글쎄, 오라니까요’ 그래서 끌고는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변기 뚜껑을 닫아 놓고는 그 위에 앉혔습니다.
‘여보, 여기 앉아요. 내가 보니까 당신이 회사에서 너무 시달리는 것 같고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데, 내가 위로해 주지 못해서 늘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오늘 내가 당신 발을 씻어 줄께요. 자 앉아요.’ 그리고 양말을 벗기고는 따뜻한 물을 가지고 발을 씻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있습니다. 묵묵히 앉아서 자기 발을 씻고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겠습니까? 자기 발을 씻겨주는 아내를 보면서 그동안 아내에게 잘못했던 여러 가지가 생각날 것이고, 미안하다는 생각도 나게 될 것이고, 참 사랑스런 아내라는 마음도 생길 것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의 발을 씻어주면서 남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처자를 먹여 살리려고 새벽부터 밥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바깥에서 언짢고 기분 상하는 일들을 많이 겼었겠지만, 가족들에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가족들을 안심시키려는 남편의 그 마음 씀씀이를 생각하면서 아마 눈시울이 뜨거워 졌는지도 모릅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다가 그날따라 봉투를 하나 건네주면서 ‘여보, 내가 그 동안 당신에게 옷 한번 제대로 사 준 일이 없었는데, 오늘 이것 가지고 가서 쇼핑이나 해’하더랍니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하고 남편을 보낸 후에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무려 50만원이나 들어있더랍니다. 그러니 그 부인이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는 감상문을 쓰다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좋은 남편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내가 이것을 들고 가서 쇼핑을 하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는 그 돈을 바로 헌금해 버렸습니다.
발을 씻겨 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사랑이 회복됩니다. 마음의 여러 가지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을 씻겨 주면서 조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을 가지고 가서 씻어 줘야지 얼음물을 담아 온다거나 8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을 들고 오면 안됩니다. 그리고 발이 더럽다고 책망해서도 안됩니다.
본을 보고 따라가는 것을 가리켜 순종이라고 합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본을 보이신 예수님께서 사신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항상 따라 한다는 것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것은 그대로 따라 했더니 기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남의 발을 씻겨 주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16,17절 말씀을 봅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13:16-17무슨 복이 있을까요? 먼저는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다른 사람을 섬겨 보십시오. 그러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면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축복이 옵니다.
오스트리아의 애들러 박사라는 분은 자기를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가서 2주일 동안 매일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한번 실천해 보세요. 2주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의 병은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병이 나은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왜 우리 마음에 병이 생깁니까? 왜 짜증스럽고, 불만이 쌓이고, 원망스럽고, 남이 미워지고, 용서가 안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가 그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못 얻어서 불만이 아닙니다. 없어서 불만이 아닙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을 보십시오. 마음에 병을 가지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의 불만을 누가 다 채워줄 수 있습니까? 늘 자기만 위하라고 하니 그 사람을 위해 줄 사람이 천하에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남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의 병이 치유를 받습니다.
시한부 생명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말기 암 환자를 섬기는 호스피스들을 한번 보십시오. 장애인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분에게 물어 보십시오. 남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마음을 쏟고 그들을 위해 섬기면 사는 사람에게 마음이 병이 있나 물어 보십시오. 마음에 병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기쁨으로 섬기는 사람의 마음에는 마음의 병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발을 씻기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복은 돈 성공 건강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7절 말씀과 같은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남의 섬기며 살아갈 때 마음 속에 기쁨의 샘이 솟아납니다. 마음의 병이 깨끗이 치유 받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두 개의 대야가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대야이고, 다른 하나는 빌라도의 대야입니다. 빌라도의 대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선고 하고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손을 씻었던 회피의 대야였습니다. 의인의 피를 씻는 범죄의 대야였습니다. 나만 살겠다는 대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도망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야는 사람들을 섬기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대야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대야가 바로 예수님의 대야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삶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복을 넘치게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