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2-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한 다락방에 모여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이것은 어떤 만찬보다 뜻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식사를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기도하시고 체포되어서 곧 십자가를 지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만찬이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입니다.
내일 죽을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 말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실 때 언제나 진실했고 순수했으며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일이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식사를 마치시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중에 특별한 두 가지 일을 행하셨습니다.
첫째가 성만찬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나의 살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포도주를 주시며 이것은 나의 피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먹고 마실 때마다 항상 나를 기억하라 며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둘째가 식사 중에 일어나셔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물론 도중에 베드로는 약간 반항했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까지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벗어 두었던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12절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13:12예수님의 질문은 왜 스스로 이런 행동을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 황당했습니다. 과연 제자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제자들이 무척 당황했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보다 윗사람이 무릎 꿇고 빌면 당사자는 많이 당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아들은 무척 당황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로 충격을 받고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죄책감과 죄송함이 들었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족식 사건의 배경을 이루는 병행 기사가 누가복음 22장에 있습니다. 세족식이 있기 전에 제자들 사이에서는 ‘누가 크냐’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 가운데 예수께서 대야에다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뜻이나 동기로 일을 하고 있어도 그 내면에서는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경쟁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은 모두 이런 식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개인적인 욕심들로 가득합니다. 너를 짓밟고 이겨야 진급을 하므로 여기서 절대 밀릴 수는 없어. 그래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포장되고 과장된 언행으로 일관합니다.
교활한 사람은 상대방의 이기심 질투심 명예심을 이용해 일을 부립니다. 겉으로 보면 상대방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용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랑 섬김 동역 비전을 갖고 진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심 없이 서로 섬기고 높이며 격려하는 동역자를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다시 자리에 앉으시고 왜 너희들의 발을 씻겼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발을 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씻는 일입니다. 허리를 굽히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꺾는 일입니다. 13, 14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3-14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섬기라는 뜻으로 친히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면에 경쟁심을 갖지 말고 자존심을 내 세우지 말며 이런 것들로 인해 자신이 지배당하지 않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주님이셨고 스승이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 같은 주님과 스승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 같은 분은 결단코 없었습니다. 그분은 온 인류의 메시아이시고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창조하신 창주주이십니다. 그런 위대하신 분이 피조물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서 너희들의 발을 씻겨주었다. 그러니 너희들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높은 자일수록 더욱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5-28겸손이란 힘이 있는 자가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은 단순히 낮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진 자가 포기하는 것, 능력 있는 자가 져주는 것이 겸손입니다. 이길 수 있지만 져주고, 갈 수 있지만 가지 않고, 갈 수 없지만 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오만은 힘 있는 자가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만큼 가졌으면 충분할 텐데 더 많이 가지려고 능력 있고 권력 있는 자가 횡포를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만한 자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눈빛부터 다르고 말투마저 다릅니다. 남을 무시하고 지배하려 들며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미안해하는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오만한 자는 목소리나 걷는 것에도 티가 납니다. 우리는 오만한 사람들을 보면 토하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의 리더십과 영적 권위는 겸손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져 진정 겸손한 사람을 보면 감동이 옵니다.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 싫어하는 세리와 창녀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분은 여우도 머리 둘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둘째 영적 교훈은 솔선수범입니다.
구약 성경에 아브라함과 롯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삼촌과 조카 관계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것은 그들의 소유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양떼를 치면서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런 성격의 싸움은 어느 누구도 말리지 못합니다. 이해가 얽힌 당사자들끼리 아무리 회합을 해도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두머리끼리 만나 합의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당시에 아브라함이 롯을 찾아가 서로 다투지 말자고 제안합니다.
어떤 분이 인간관계 개선에 관한 특강을 하면서 청중들에게 ‘인사는 누가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어린 사람이요’ 틀렸습니다. ‘직책이 낮은 사람이요’ 틀렸습니다. ‘먼저 본 사람이요’ 반만 맞았습니다. ‘인사는 항상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빙고. 맞았습니다.
관계의 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먼저 다가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기 잡던 어부들에게, 38년 된 병자에게, 남편을 5번이나 바꾼 여인,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던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결국은 인류에게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오늘도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조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겠다 며 선택권을 양보한 후 각자 갈 길을 정하고 서로 헤어집니다.
분쟁이 있을 때 먼저 화해를 청하는 자가 형님이 됩니다. 나이가 많거나 학식이 높아야 형님이 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해 순리로 일을 풀어나가는 자가 형님이요 애국자입니다. 모두 죄인들인데 누가 더 잘나고 더 못난 것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분야를 올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해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답을 몰라서 지금까지 마냥 지내온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겁이 나서 못하고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화려한 말로 때웁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중에 말없이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물을 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감동을 주는 일입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하고 남이 말하니까 나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한 감동이 솔선수범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들을 갑작스레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알며 느끼는 대로 조금씩 바꿔나갈 때 감동이 있게 됩니다. 진정한 영적 권위와 리더십은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22년 5월 11일 오전 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