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13:6-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한 사람씩 씻기시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이르렀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요13:6제자들은 얼떨결에 예수님께 발을 맡겼습니다.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6절에 보니까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당신을 우리의 주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또 세상의 구주로 믿었는데 어떻게 그 거룩하신 분이 나의 발을 씻길 수가 있습니까?’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만지기만 해도 문둥병이 낫고 닿기만 해도 장님이 눈을 뜨게 만든 그 거룩한 손이 어찌 나의 이 더럽고 더러운 발을 씻길 수 있겠습니까?’ 이런 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 발을 씻기는 것은 인류 도덕상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런 뜻의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의 바르고 똑똑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사회 통념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과연 수제자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허락지 않으십니다. 7절 말씀을 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요13:7베드로는 단순히 발 씻기로 보았지만 세족식은 베드로가 그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사건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모르니까 주님과 대화가 되지 않고 뜻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뜻을 깨달을 때에 주님이 과연 옳았다고 말씀드리게 되고, 마음 중심으로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8절 말씀을 읽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13:8‘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도대체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본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대해 갖는 태도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고, 둘째는 사랑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사랑을 받고도 배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성도로서의 향기를 발하는 아주 바람직한 사람입니다.
둘째 유형, 곧 사랑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입니다. 셋째 유형, 곧 사랑을 받고도 배신하는 사람으로 배신자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자세는 둘째 유형에 속합니다. 사랑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기준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도가 어떠하든 자기 기준에 어긋하면 그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 바로 베드로의 태도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보다 내 판단과 고집과 기준을 가지고 살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제일 먼저 갖춰야 할 선행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넘치는 섬김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눅15장을 보면 탕자가 나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외국으로 가서 허랑 방탕하게 보내어 그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결국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지내다가 ‘이렇게 살 바에야 아버지께 돌아가서 품꾼의 하나로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품군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맞이했습니다. 송아지를 잡고, 풍악을 울리고, 그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신을 신기고,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돌아온 아들은 자신을 이렇게 환영하는 것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합니까? 아버지의 이런 큰사랑을 받기에 염치가 없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들입니다. 뻔뻔스럽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입니다.
만약에 아들이 ‘아버지, 나는 범죄한 종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끝까지 나는 종의 신분으로 지내겠습니다’
이렇게 1년, 2년 고집을 부린다면 그는 진정한 아들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행동에는 아픔과 부끄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씻길 수 없다고 할 때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상관이 없다는 말씀은 관계가 멀어진다. 교제할 수 없다. 동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관계가 멀어지거나, 끊어지면 끝장입니다.
사울 왕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거듭되는 불순종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결국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사울 왕이 비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니까 결국 승리하게 되고 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다윗 또한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고백한 것이 시32편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32:3-5다윗이 죄를 지어 주님과의 관계가 나빠질 때 다윗은 회개함으로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가 나빠지면 고통스럽습니다. 관계가 나빠지면 남보다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란 예수님과 상관이 있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모든 부분에 예수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서전을 읽어보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 쓴 자서전과 믿음이 없는 사람이 쓴 자서전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자서전은 전부 자기 공로 밖에 없습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똑똑해서’하고 자기만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주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간증이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누가 가장 잘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이 우리의 재산입니다. 어떤 교회가 강력한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많이 받은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께 훈련받은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으니까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하며 사역의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바로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나 혼자만 겨우 살 정도가 아니라 내 속에서 은혜가 철철 넘쳐서 그 흘러나는 생수가 주변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흘러넘치는 주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받아 주변의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5월 7일 오전 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