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요12:36-4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6참으로 이상한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일체의 공적인 활동을 중단하시고 잠적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에 앞서, 먼저 그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를 다니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무리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그와 같은 모든 사역들을 마무리해야 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기간을 이용해서 조용한 곳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격려하고, 교육하며, 그들을 준비시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3장 이하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만나서 말씀하시는 모습만을 볼 수 있습니다. 무리들 앞에서 하신 말씀은 36절이 마지막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치료하시던 사역을 이제 마무리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3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지난 3년 동안 하신 사역이 실패작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요12:37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대표적인 7가지 표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물을 포도주로 만드심
2왕의 신하의 아들을 원방에서 고치심
3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었던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심
4오병이어로 오천명을 실컷 먹이고 12 바구니를 남기심
5물 위를 걸으심
6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고치심
7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심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21:25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은 사람은 별로 많이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을 말한다면 배신과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이해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말하지도 못하고, 말하는 만큼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자기가 가진 생각에 붙들리어, 즉 자기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적 이해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의 문장 이해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라고 하더군요. 글을 읽어도 필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면 의사로 오해하고, 5,000명을 먹이시면 경제적 해결자로 우러러보았고, 누구는 재판관으로 심지어는 미치광이로까지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자기 나름대로 오해했습니다. 표적이 부족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고, 5천명을 먹이셨고, 맹인이 눈을 떴고, 바람과 풍랑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많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많은 표적 속에서 또 다른 표적을 계속 구했습니다. 그리고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표적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말씀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완악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말씀에 은혜가 없으며, 교인이 교인답지 못하다고 이유를 들어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못하는 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요12:38무슨 뜻인지 금방 귀에 안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누가 우리의 말을 믿었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하고 하나님의 강한 팔을 보여줄 때 예수님을 믿고 돌아온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가 귀를 막고 안 들었습니다.
이사야는 장차 나타날 불신의 세대를 내다보고 이미 이런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대로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요12:39-40왜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까? 40절 말씀은 하나님이 그 눈을 가려 놓았으니 못 믿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구원을 받을까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그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고, 무슨 소리를 해도 듣지 못하도록 그 귀를 막아 버려서,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하다가 저주받는 자리에 이르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이나 예수님 당시의 빌라도, 대제사장 같은 사람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일반적인 경우로 확대 해석하면 안됩니다. 40절 말씀은 일반적인 경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못 믿도록 막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믿지 못한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40절 말씀을 읽을 때는 조금 각도를 바꾸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죄로 인하여 그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이미 어두운 사람인데 그를 또 어둡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또 사람은 이 세상에 날 때부터 마음이 강퍅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옵니다. 미련한 마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돌짝밭과 같고 가시밭과 같아서 아무리 귀가 아프도록 드려 주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날 때부터 이미 완악한 데 또 완악하게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이 눈을 멀게 했다. 완악하게 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안됩니다. 이 말씀은 눈 먼 사람은 눈먼 그대로 내버려 두셨고,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완악한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1:24"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롬1:26이것을 일컬어서 본문에서는 눈을 멀게 하셨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려면 그 마음 속에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눈을 뜰 수 없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셔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귀를 열어주셔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 주셔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100% 역사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100% 기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