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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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지난 1천년 동안 인류가 큰 발전을 이루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뽑는다면 우리 인류에게 빛을 선물한 에디슨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빛은 길거리의 어두움은 해결하여 주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움은 밝혀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을 어두움에서 해방시켜 주실 참 빛은 누구입니까? 바로 세상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둠 가운데서 살아 왔습니다. 동서양의 모든 역사도 어두움의 역사였습니다. 어두움에 잠겨있던 이 땅에 빛을 비춰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이 세상, 참 빛이 없는 이 세상을 사는 우리 인간은 오랫동안 어두움의 사상, 어두움의 지식, 어두움의 도덕, 어두움의 문화의 길을 끊임없이 방황하며 걸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간은 영혼의 눈이 밝아져서 진리를 보고, 죄를 보고, 천국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보게 되면서 죄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지면 우리 마음에 있는 온갖 더럽고 악하고 불의한 생각들이 다 떠나가고 삶의 주변에 있는 어두운 것들이 다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빛의 종교입니다. 빛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빛은 밝습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나라마다 밝아집니다. 개인의 마음도 밝아지고, 가정도 밝아지고, 사회도 밝아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빛으로 여기는 나라는 어둡습니다. 인도를 보십시오. 북한을 보십시오. 예수 이외에는 빛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빛이 영혼을 비추고 심령을 비추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빛은 아름답습니다.

빛의 색깔은 찬란합니다. 빛이 만물을 비췰 때 아름답습니다. 어두움은 언제나 한 가지 색깔이지만 빛은 수백 수 천 가지 색깔을 냅니다.

주님의 빛이 나를 비췰 때 내 삶이 아름답게 보이고, 내 아내와 자녀가 아름답게 보이고, 밥상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빛이 없게 되면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입니다. 온갖 저주와 한탄, 비애와 슬픔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비록 밤일지라도 아름답습니다.

빛이 비추어지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출 때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우리의 언어가 아름답고, 우리의 가정이 아름답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빛은 생명입니다.

태양 빛이 비추어지면 모든 생명이 살게 되고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되고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빛, 참 빛은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자라나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빛인 줄로 믿습니다.

빛의 삶은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빛의 삶은 행복한 삶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다 남향으로 짓는 것은 빛을 많이 받기 위함입니다. 빛을 많이 받는 집이 좋은 집이요, 빛을 많이 받는 마을이 좋은 마을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빛을 많이 받아들일 때에 여러분의 삶에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빛이란 말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빛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 예수님을 가리키듯,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요8:12절에서

그래서 보통 ‘빛’이라는 단어를 쓸 때 영어로 라이트(light)라고 하는데 35절과 36절에서 ‘빛’은 정관사 ‘더(the)’를 붙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보통 빛이 아닌 ‘바로 그 빛’이라는 뜻입니다. 태양, 전깃불, 촛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바로 그 빛(the light)’이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35절과 36절에 ‘빛’이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오는데 네 번은 정관사가 붙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빛에는 정관사가 없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표현입니다. 정관사가 있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빛입니다. 정관사가 없는 빛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이런 의미로 35, 36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바로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해 네 가지 메시지를 남기십니다.

첫째, ‘바로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잠시 동안 사람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메시아도 영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도 영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므로 이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말은 ‘이 메시아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아는 영원히 지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때가 차면 그분은 제자들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이라는 말을 새겨 봐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잠시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가실 분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7

둘째, 예수님께서 빛이 있는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혀 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어둠의 반대 개념입니다. 어둠의 특징은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길은 빛이 있을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둠이 깔린 세상에서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찾지 못하면 곧 절망하고 맙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채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러면 불안하고 우울해지며 나중에 병들어 죽게 됩니다. 인간은 희망을 잃어버리면 짐승과 같아지고, 빨리 죽음을 맞게 됩니다. 희망을 가질 때에 병과 암도 이기고 위기와 절망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이 꺾이고 맙니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 본 적이 있습니까?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여기저기 다녀본 적이 있습니까? 어딘지도 모른 채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다면, 몸서리쳐지듯 두려웠던 그때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어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둠에 익숙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어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칠흑 같은 현실이 어둠이라는 사실은 빛을 바라볼 때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어둠에 있고 그 어둠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빛이 있으니 그 빛이 있는 동안 다녀 어둠에 다시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태양이 떠 있습니다. 바깥으로 나와 햇빛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햇빛이 싫어서 지하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신세대의 특징에 대해 한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낮을 싫어하고 밤을 좋아합니다. 햇빛보다 달빛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잠자는 것을 싫어하고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을 싫어합니다. 여러분이 태양을 사랑하고 빛을 좋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빛이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요12:36

어둠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빛을 찾는 것이요, 빛을 믿는 것이요, 그 빛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둠, 저주, 절망, 좌절, 죽음의 세력을 몰아내는 방법은 철학이나 논리가 아니고 학문이나 돈도 아니며, 명예나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참 빛만이 그 세력들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참 빛이 임하면 어둡고 암울하던 내 영혼은 생기가 돌고 신선해집니다.

빛이 있는 동안 어둠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추우면 불 곁으로 가면 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제아무리 ‘배고픈 귀신아, 물러가라’고 외친다 해도 배고픔은 여전합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는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외롭다고 하면서 사람 만나기를 거부한 채 비판만 일삼고 있으면 더욱 외로워집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경우에 외로움은 본인 스스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다며 모두 멀리하면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 못합니다. 빛을 비추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귀신도 공존하지 못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단호하게 도전하십니다. 빛이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으며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에 붙잡히지 않고 그 빛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넷째, 빛이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으면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고, 빛 안에 들어와 살면 빛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요12:36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입니다. 어둠의 자녀는 가인의 후예입니다. 그들은 착하게 살고 싶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부정, 비판, 음란, 거짓 등 어둠의 세력이 독버섯처럼 계속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저주, 죽음, 어둠의 세력에게 지배당합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꾼이 됩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빛의 자녀가 되면 입에서 자꾸만 찬송이 나옵니다. 이전에 입으로 욕을 했더라도 사람들에게 축복을 말하고 성경 말씀을 암송하게 됩니다. 빛의 자녀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빛의 자녀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설명해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의 언어와 문구는 알고 있었지만, 깊은 속뜻은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말과 문구만이 아니라, 깊은 속뜻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시간 동안 인내심으로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신앙 때문에 듣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불신앙이란 단순히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현상입니다. 불신앙의 깊은 곳에 어둠의 영이 있습니다. 기적이나 표적을 보게 되어도 ‘그래도 안 믿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의 깊은 곳에는 오만과 교만이 있습니다.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을 뛰어넘는 교만이 불신앙입니다. 단지 논리에 맞지 않고 사리에 맞지 않으며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어둠의 영이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유로 ‘비합리적이다, 비논리적이다, 비상식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방어를 위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영혼 깊은 곳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앙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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