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17-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요12:17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지만, 영적으로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적어도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3-34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 승리의 개선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시는 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예언의 응답인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7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 온 인류의 구원자로 세우시겠다는 예언의 응답이었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1:18-19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과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환영하는 인파들도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요12:17목격자의 증언은 큰 효력을 가집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라며 끊임없이 증언했습니다.
목격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게 됩니다. 타인을 통해 간접으로 전해들은 사람들은 별로 전도의 열정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경험하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사실에 대해 자주 언급하게 됩니다.
둘째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18절 말씀을 봅니다.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요12:18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환영 인파에 모인 것입니다. 복음은 ‘착하게 살자, 의롭게 살자, 믿음 없는 것보다 믿음 있는 것이 낫다’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과 같이 충격적인 것입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반대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 바리새인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습니다. 19절 말씀을 읽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요12:19바리새인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서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음을 보고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었습니다. 엄연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우리의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고 말았어. 예수를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라. 이제 소용없게 됐어’라는 이야기들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그때, 매우 중요한 사건을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에 헬라인 몇 명이 있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예수가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는 함성 속에 옷을 벗어 길에 깔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한 분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헬라인들에게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분은 누굴까? 왜 많은 사람들이 저분에게 환호성을 보내는 것일까?’ 그래서 헬라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갑니다. 그에 대한 내용이 20, 21절 말씀에 있습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요12:20-21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만나보겠다며 찾아온 사건은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유대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매우 하찮은 이방인들이 찾아온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기셨습니다.
왜 헬라인들은 빌립을 찾아갔을까요? 그들이 빌립을 찾아가 요청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뵙기 원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빌립이 그들의 요청에 당황하며 머뭇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와 의논합니다. 안드레도 빌립에게 ‘우리가 함께 가서 예수님께 이 말을 전하자’고 제의합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예수님께 헬라인들이 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요12:22빌립과 안드레의 얘기를 들은 예수님의 대답은 좋다 혹은 싫다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23제자들이 헬라인들의 간청을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헬라인 몇 사람이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장차 이루어질 일을 내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때부터 모든 민족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라고 하신 말씀이 응하게 됩니다."
마8:11주님은 이 일이 성취될 그 날이 가까웠음을 보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하고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드릴 정도로 귀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죄로 인하여 영벌 받을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로 인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업에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정에 우선권을 두고 정성을 쏟으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학문에 생명을 걸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명성을 날리는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업에 모든 정력과 시간을 쏟으면 사업가로서 기반을 든든히 닦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일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입니다.
행복한 가정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명성을 얻게 된 학문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사업을 해서 성공을 이룬 성공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고 보람 있는 것이 되려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그 일과 연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까? 이웃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자녀들을 잘 키우려고 합니까? 이 자녀가 다음에 자라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사업을 하기 위해 밤낮 정신없이 뛰어 다닙니까? 하나님이 물질을 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복음 사업을 위해서 기쁘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불신자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와같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우리의 사업이나 가정, 학문과 연계될 때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골3:22-24에서 사도 바울은 노예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3:22-24노예가 섬기는 자는 자기 주인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이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하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후에 자기 동료들을 예수 믿게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좀 똑똑한 사람들은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주인의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쳐 예수 믿게 했습니다. 이 자녀들을 통하여 주인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로마제국이 300년 동안 기독교를 핍박했지만, 이러한 복음 사역은 끊임없이 이어져, 나중에는 천하의 박해자 네로 황제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자가 상당히 생겨났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되도록 한 통로는 바로 노예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퍼진 복음은 드디어 300년 후에 대 로마제국을 완전히 삼키기에 이르렀던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신분과 직업이 비천한 노예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의 삶을 이용하자 노예 생활 자체가 주님을 섬기는 가치 있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업, 재능, 재물이 주님께서 죽도록 충성하셨던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직, 간접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분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미있는 삶이요, 주님을 섬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는 일과 별로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따르고 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2년 4월 23일 오전 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