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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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요12:12-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오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지 곧 이스라엘 왕이시여 했습니다. 예수님이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셨는데 이는 스갸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너희 왕이 겸손하여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오신다함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과 비교할 때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은 겸손하신 왕이십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셨다는 것입니다. 슥9:9을 다시 봅시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나귀의 크기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나귀 새끼를 타셨을까요? 하나님이 스가랴를 통해 자신을 ‘나귀 새끼를 타고 오는 왕’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 말씀을 이루고자 나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스가랴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9:9

겸손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로 내려앉아 함께 울고 함께 웃기를 기뻐하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거칠게 대하지 않고,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사람과 가까워지는 태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왕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8-29

우리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수고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죄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두 가지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죄와 사망이 주는 영적인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죄가 우리를 짓누릅니다.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앙심의 가책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롬22-2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영적인 짐에서 누가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

그러나 우리에게 또 한 가지 무거운 짐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인생 여정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피곤할 때도 많습니다. 슬플 때도 많습니다. 상처 입을 때도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습니다. 고독할 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기쁘고 신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행을 산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짓누르는 수고와 슬픔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과 같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겸손하신 왕이 필요합니다. 그 분이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왕으로 나를 다스려 주실 때에만 마음에 쉼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사울이 왕일 때와 다윗이 왕일 때는 천양지차였습니다. 다같이 구원을 받았지만 내가 왕이 되어 나의 인생을 다스릴 때와,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실 때는 천양지차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인물입니까? 당대 최고의 석학입니다. 율법의 의로도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늘 고백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 왜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까? 자기 스스로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쉼을 얻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왕위를 물려 드리고 그 분의 종이 되어 그 분이 다스림을 받을 때에만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 가운데 계십니까? 지쳐 있습니까? 고독하십니까?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이겨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예수님은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2예수님은 희생하시는 왕이십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월절을 맞이할 때마다 세계 도처에서 온 2백만이 넘는 군중에 의해 예루살렘은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들은 10명이나 20명 단위로 한 팀이 되어 제물을 잡아 함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도 유월절에 성전 안에서 희생되는 짐승의 수는 25만 6천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짐승들이 피를 흘리고 제단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것입니다.

이 짐승들은 유월절이 있는 그 달 10일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끌려갑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바로 그 날입니다. 수많은 양들이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끌려 들어가 따로 설치된 특별 구역에서 기다리다가 그 달 14일이 되면 한꺼번에 다 죽임을 당해서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드려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던 바로 그날, 그 양들 역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어린양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모든 양들이 죽임을 당할 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지막 유월절 양이 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대속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의 고통을 대신 당함으로서 그 고통에서 풀어주는 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나의 고통과 나의 형벌, 나의 저주를 대신 받아 주시고 나를 거기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이것이 대속의 죽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바로 이러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3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한 알의 밀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열매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고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목적이었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12:32-33

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들리면 이라는 말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면, 승천하면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심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면,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내게로 이끌겠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28

계시록에 보면 읽을 때마다 가슴을 뛰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3-4

누가 이런 영원하고 행복한 천국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분의 구원은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 분의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구원을 주십니다.

겸손하신 왕이요, 희생하신 왕이요, 우리를 구원하신 왕이신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 각자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못 자국난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11:28-30

이렇게 말씀하시는 겸손하신 주님, 희생하신 주님, 구원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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